‘김영완 3000만달러’ 이익치 前회장 소환조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9일 03시 00분


당시 현대증권 회장으로 송금 관여… 검찰, 계좌주인 조사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투신자살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현 민주당 국회의원)의 구속을 불러왔던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자금 전달에 관여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6일 검찰에 소환 조사를 받으면서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이 전 회장은 현대상선이 1999년 12월부터 2000년 1월 사이 현대 비자금 핵심 인물인 김영완 씨가 지정한 스위스 계좌로 현대상선 자금 30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343억 5000만 원)를 입금하는 데 관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 검사장)는 이날 이 전 회장을 상대로 현대상선이 현대 비자금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 씨가 지정한 스위스 계좌로 3000만 달러를 보낸 경위를 조사했다. 특히 이 3000만 달러를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와 계좌 주인이 누구인지 집중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은 현대 측에서 비자금으로 마련된 양도성예금증서(CD) 150억 원을 박 전 장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인물이다. 그러나 검찰이 미국 시민권자인 김 씨가 이 CD를 세탁한 사실을 포착한 뒤 해외에 있던 김 씨로부터 “박 전 장관에게서 150억 원의 CD를 넘겨받아 관리했다”는 진술을 받아 공판에 제출했지만 2006년 9월 대법원은 “이익치 김영완 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박 전 장관은 현대 비자금 150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2006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또 권 전 고문은 현대 비자금 200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따라서 김 씨가 이번 검찰 수사에서 새로운 진술을 한다고 해도 박 전 장관과 권 전 고문이 기소된 혐의가 변화될 가능성은 없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권 전 고문은 이미 유죄가 확정됐다. 이미 무죄가 확정된 박 전 장관의 경우 새로운 단서가 드러난다고 해도 피고인의 이익에 부합할 때 재심이 받아들여지는 법원의 재심 관행에 비춰볼 때 재심이 수용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김 씨가 검찰 조사를 받은 것도 검찰의 의지가 작용한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씨가 오랜 도피생활 끝에 최근 검찰에 조사를 받겠다는 의사를 피력했지만 검찰은 선거 국면을 의식해 오히려 김 씨에 대한 소환 조사를 꺼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씨가 조사받기를 강력히 희망하자 내년 총선이 임박한 봄철보다는 지금 조사를 완결하는 게 정치적 논란이 적겠다고 판단해 지난달 26일 김 씨가 귀국한 직후 소환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대검 중수부의 이번 수사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고 해도 공소시효가 모두 지난 상황이어서 과거 사건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차원의 수사가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검찰은 현대상선이 3000만 달러를 스위스 계좌에 송금한 경위 등을 확인하기 위해 조만간 현대상선 박모 전 임원 등 당시 송금에 관여한 인물을 추가로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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