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중고생 필수품? ‘N점퍼’가 뭐길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3일 03시 00분



중고교생 사이에서 교복이나 다름없는 아웃도어 ‘N’ 브랜드 점퍼(‘N 점퍼’). 한 벌에 20만∼30만 원부터 100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 상품도 있지만 학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다. 많은 학부모가 ‘N 점퍼’를 사달라는 자녀의 요구에 시달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N점퍼 열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부 학생 사이에서 조금 독특한 현상이 발견된다. 어떤 색상, 얼마짜리의 N 점퍼를 입는지가 개인의 취향이나 경제 형편 이외에 다른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

경기도의 한 중2 A 양(13)은 최근 빨간 색상의 N 점퍼를 구입했다가 일주일 만에 중고품 판매 사이트에 내놓았다. 학교에 입고 갔다가 ‘일짱’으로 불리는 학생에게 ‘네가 뭔데 빨간색 N점퍼를 입느냐’ ‘튀고 싶어 환장했냐’ 등 욕설을 들었기 때문이다.

A 양의 말에 따르면 그가 다니는 학교에서 소위 좀 논다는 학생들은 빨강, 노랑, 보라처럼 튀는 색상의 N점퍼를 선호한다. 평범한 학생들은 입더라도 까만색이나 남색 같은 어두운 계열을 주로 입는다. A 양은 “날라리 애들이 모여 있으면 휘황찬란하다. 튀는 걸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면서 “평범한 학생들은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에 눈에 확 띄는 색은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고기능성의 초고가 제품을 착용함으로써 ‘신분’이 상승한 경우도 있다. 서울의 한 고1 남학생 B 군(16). 내성적인 성격 때문인지 학기 초부터 그는 따돌림을 당했다. ‘빵셔틀’(매점에 간식을 사러가는 심부름을 수행하는 것)에도 시달렸다. 그의 학교생활이 완전히 달라진 건 두 달 전 N점퍼를 입으면서부터다.

B 군은 ‘N점퍼를 입으면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한 달 동안 아버지를 졸라 점퍼를 구입했다. 아버지가 사 주신 점퍼는 시가로 100만 원이 넘고 구하기도 어려워 전교에 입는 학생들이 몇 없는 제품. 막상 구입하고서도 B 군은 학교에 이걸 입고 갈지 말지 수십 번 고민했다. 이 정도 튀는 제품을 B 군이 입는다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처음 N점퍼를 입고 간 날. B 군은 학급 친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네가 이런 걸 입고 올 줄 미처 몰랐다” “용감하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그를 괴롭히던 학생들까지 와서 “어디서 샀냐” “방수 잘되냐”고 물었다.

이를 계기로 서서히 학급 친구들과 대화를 하게 된 B 군. 그는 이제 친한 친구들이 생겼다. 빵셔틀에서도 벗어났다. 자신감이 생기고 성격도 밝아졌다. 그에게 N점퍼는 슈퍼맨 망토이자 구세주다. 이틀에 한 번꼴로 드라이클리닝을 맡긴다. 용돈의 대부분이 세탁비로 나간다. 소중하게 입다가 다른 비싼 신제품이 나오면 또 구입할 생각이다. 다시 외톨이로 돌아갈까 불안한 마음에서다.

도대체 이 점퍼가 뭐길래. A 양과 B 군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 인상 깊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애들 중에는 N점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애들도 있어요. (N점퍼를) 안 입어도 무시당하지 않으니까요.”

옷으로라도 주목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중고생들의 마음을 무조건 탓할 수만 있을까. 하지만 특정 브랜드의 점퍼를 고집하기 전에 제 마음 속에 ‘자신감’이라고 하는 따스한 옷부터 차려입었으면 좋겠다.

장재원 기자 j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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