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보상금때문이라뇨? 고향 지켜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5일 03시 00분


강원도 “인허가 적법했다”

강원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 주민이 강원도청에서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노숙투쟁을 시작한 지 40일을 넘어섰다. 이들은 비닐천막에서 영하권의 날씨를 견디며 생활하고 있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강원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 주민이 강원도청에서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노숙투쟁을 시작한 지 40일을 넘어섰다. 이들은 비닐천막에서 영하권의 날씨를 견디며 생활하고 있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영하의 날씨 속에서 엄모 씨(70)는 스티로폼을 바닥에 깔고 두 겹의 비닐을 천장 삼아 밤을 지새운다. 전기장판의 온기가 그나마 위안이지만 찬 공기는 이불 밖으로 나온 얼굴을 사정없이 괴롭힌다. 날이 춥다 보니 새벽에는 비닐 천장에 물기가 맺혀 떨어지기도 한다. 난로는 화재 위험이 있는 데다 질식 가능성도 있어 사용하지 못한다. 감기에 걸린 지는 이미 오래. 지병으로 고혈압약과 감기약을 달고 산다.

엄 씨는 강원도청 본관 앞에서 마을 주민과 함께 ‘노숙 투쟁’ 중이다.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에 건설 중인 골프장 인허가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14일은 노숙을 시작한 지 41일째. 주민 15∼20명이 교대로 비닐 천막을 지켜 왔다. 이들은 하루는 이곳에서, 하루는 강릉시청에서, 하루는 집에서 지내는 생활을 해오고 있다.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중노년층이라 추운 날씨를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 엄 씨는 “주민 가운데 감기약을 먹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이날 춘천의 최저기온은 영하 5.8도.

장기간의 노숙으로 이들의 생활은 뒤죽박죽이다. 부부가 함께 노숙하는 서모 씨(56)는 “강릉과 춘천을 오가느라 농사는 손도 못 대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막내딸은 돌보지도 못한다. 하지만 9대째 살고 있는 마을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항변했다. 자신들이 더 많은 보상금을 타내기 위해 투쟁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다. 조승진 강릉CC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우리는 인허가 절차의 문제점을 바로잡으려는 것인데 마치 보상을 원하는 것처럼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노숙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골프장이 건설되면 연간 4억 원가량의 수익을 내는 송이 채취에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다. 수백 년 된 소나무와 날다람쥐 등 동식물의 피해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의 도청 투쟁은 11월 4일 시작됐다. 이날은 강원도의 공무원 체육대회가 있었다. 경찰 및 경비원들과 몸싸움을 벌인 끝에 텅 빈 도청에 진입한 이들은 말 그대로 자리를 깔았다. 그러나 이렇게 노숙 투쟁이 길어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올해 4·27 보궐선거 당시 ‘주민 동의 없이 추진되는 골프장 개발을 반대한다’고 한 약속을 지켜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주민도 모르는 새 의제 협의가 완료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의제 협의를 근거로 강릉시는 사업계획 승인 및 실시계획 인가를 끝마쳤다.

강원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주민에게 제시할 마땅한 카드가 없는 데다 추운 날씨에 방치된 주민들의 건강도 걱정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인허가는 적법하게 이뤄졌다”며 “절차상 문제가 있다면 감사를 통해 확인하고 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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