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회사에서 고졸자를 아예 뽑아주지 않으니 과거 일부 여상에서는 아이들에게 그래픽디자인 등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제는 금융 관련 자격증 취득을 돕는 과목들이 포함되는 등 교과과정(커리큘럼)이 달라지고 있습니다.”(이창우 서울여상 특성화연구부장) 기업은행이 7월 1일 15년 만에 특성화고 출신 직원 20명을 선발한 후 주요 금융회사와 대기업 사이에 고졸 채용 바람이 불고 있다. 고졸 채용을 다시 시작한 지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고졸 채용에 대한 평가는 매우 호의적이다. 은행이나 기업의 수요를 반영해 특성화고의 교과과정이 바뀌고 있고, 은행들의 채용 및 인사정책도 고졸 채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은행들은 조직 충성도가 높은 고졸 직원들이 영업점 분위기까지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
○ ‘기업 주문형’ 인재 만드는 데 총력
기업은행은 올해 하반기 신입 은행텔러(창구 직원) 모집에서 특성화고 출신 학생 45명을 뽑았다. 내년 1월 영업점에 배치될 신입 텔러 5명이 기업은행 본점에서 손을 맞잡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기업은행 제공서울시교육청은 12일 서울공고에서 ‘특성화고 교육과정 개편 대토론회’를 열고 내년부터 서울시내 75개 특성화고교의 커리큘럼을 최대한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실무 과정 중심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에 따라 각 특성화고는 교육과정 중 50% 이상을 금융, 정보기술(IT) 등 전문 교육으로 채우게 된다. 시교육청은 교과목을 개발하는 해당 고교별 교육과정위원회에도 산업체 인사를 30% 이상 포함시켜 전문 교과목을 교사와 업계 인사가 같이 개발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특히 산업계 인사들이 일회성으로 학교를 찾아와 잠깐 강의하는 일은 산학 협동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보고, 은행 임원 등 기업체 실무자를 계약직 교사 형태로 채용해 아예 정규수업을 맡기는 ‘산학협력교사’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특성화고 졸업생이 산업현장에 바로 적응하려면 교육과정에서 기업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특성화고들의 자체 준비도 한창이다. 이창우 부장은 “최근 주당 1시간이던 엑셀 수업을 2시간으로 늘리고 은행텔러(창구 직원) 자격증 과목도 보충수업 형태로 신설했다”며 “학생들끼리 서로 금융 관련 지식을 배우고 가르치는 동아리도 만들었다”고 밝혔다. 현재 서울여상의 정규과목 중 금융자격증 관련 과목은 금융일반, 금융법규, 금융실무, 증권금융시장, 국제금융 등 총 5개다. 이 과목들을 통해 은행텔러, 펀드투자상담사, 파생투자상담사 자격증 등 은행이 원하는 3대 자격증을 모두 취득할 수 있다. ○ 은행 채용 및 인사 정책도 변화
금융회사들의 채용 정책도 대대적으로 바뀌고 있다. 하반기에 고졸 채용을 하던 기업은행은 내년에는 아예 상반기로 채용 시기를 앞당기기로 했다. 일찍 뽑을수록 은행이 원하는 인재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임대현 기업은행 인사부장은 “고졸 직원이 대졸 직원보다 적게는 4∼5세, 많게는 10세 가까이 어리다 보니 돌발상황 대처 능력이 좀 떨어진다”며 “해외연수, 고객응대(CS) 교육 등을 통해 아직 10대인 고졸 직원들의 견문을 넓혀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성화고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해외연수를 실시할 수 없으므로 이런 부분을 은행이 방학 등을 활용해 직접 하겠다는 뜻이다. 오동수 대구은행 인사부장은 “과거에는 고졸 직원들을 뽑거나 이들의 인사고과를 평가할 때 창구담당 직원의 최대 덕목인 커뮤니케이션 능력만 중시했다”며 “하지만 앞으론 대졸 직원과 마찬가지로 논리적 사고, 전문성, 리더십 항목도 보겠다”고 밝혔다. ○ “생글생글 웃는 고졸 직원이 더 좋아”
고객들도 고졸 직원들을 반긴다. 올해 7월에 입사한 김혜인 계장(18)이 근무하는 기업은행 삼양지점을 자주 방문한다는 주부 유모 씨(53)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우리 딸은 나이가 훨씬 많은데도 아직도 이것저것 사달라고 투정한다”며 “10대 소녀들이 의젓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대견하고, 실수하더라도 예뻐 보인다”고 말했다. 박기수 대구은행 성당지점장은 “고졸 직원을 1년 넘게 데리고 있었는데 대졸자에 비해 조직 충성도가 높고, 업무 지시도 잘 따라 아주 만족한다”며 “기획, 재무와 같은 본사의 일부 업무를 제외하면 굳이 높은 임금을 주고 대졸자를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창구 직원처럼 고졸자가 할 수 있는 일을 대졸자가 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이므로 학력이 덜 중요한 직군에선 고졸자에게 대졸자와 동등한 입사 기회를 주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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