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떼먹은 직원연금보험료 2조원… 체납 사업장 전국 47만 곳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6일 03시 00분


은퇴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 “내 연금 달라” 민원-소송

강원 원주시의 한 의료기기 제조 공장에서 일한 김모 씨(56)는 올 9월 퇴직 직후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했다. 60세가 넘으면 ‘완전노령연금’을 받지만 당장 소득이 없어 연금액의 일부(70%)라도 미리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연금 수령 불가’였다. 연금 보험료를 징수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이유를 따졌다. 직원은 “당신이 낸 보험료를 회사가 30개월간 떼먹었다”고 말했다. 15년간 근무한 회사가 김 씨의 보험료를 내지 않았던 것. 김 씨와 함께 퇴직한 동료 5명은 사업주를 경찰에 고발했다.

김 씨와 같은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주가 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아 유일한 ‘노후대책’으로 믿어왔던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강원 횡성군 K사에서 일했던 하모 씨(56·여)는 올 10월까지 6년간 매달 4만 원 이상의 연금 보험료를 냈다. 가입 기간을 늘리기 위해 7년 전에 받았던 반환일시금도 반납했다. 그러나 퇴직한 후 국민연금을 신청하자 ‘납입 보험료 부족’이라는 말을 들었다. 회사 측이 부담할 보험료(연금 보험료의 절반)는 물론이고 하 씨 월급에서 빠져나간 보험료까지 공단에 내지 않은 것이다.

사실 국민연금 보험료 체납 사업장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사업장은 2008년 31만3500개에서 지난해 32만 개로 소폭 늘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9월 현재 47만 개로 47% 급증했다. 연금 보험료 체납 규모도 9월 말 1조9000억 원으로 조만간 2조 원을 넘는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회사 측 부담금만 내지 않는 수준을 넘어 근로자 월급에서 원천징수한 보험료까지 떼먹는 사업장이 부쩍 늘어났다. 건강보험공단 측은 “불황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말한다. 국민연금공단은 공식적으로 “보험료 징수 업무가 올해 건강보험공단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베이비부머 세대 중 만 55세 이후 조기노령연금 신청자의 대부분은 저소득층이다. 조기노령연금은 납부 기간이 10년 이상에 만 55세 이상, 월소득 182만 원 이하이면 신청할 수 있다.

이들이 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속출하면서 체납 사업장을 관리하는 건보공단 지사마다 생계형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 사업주 고발과 보험료 반환 청구 소송도 벌어지고 있다.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서 일하던 근로자 200여 명은 회사가 연금 보험료를 60개월 이상 내지 않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이 공단에서 올 4월 퇴직한 이모 씨(55)는 “동료 15명이 회사를 그만두고 곧바로 국민연금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회사가 장기간 체납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을 것”이라며 “연금공단에서 정식으로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국세청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사업주에 대한 재산압류 등 체납 처분에 들어갈 방침이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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