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북한에 피랍됐다가 1986년 탈출한 원로배우 최은희 씨(85)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듣고 “저와 남편(고 신상옥 영화감독)을 납치했던 걸 떠올리면 분하지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안 됐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며 “김정일 위원장이 잘 대해줬는데…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그는 19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납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 위원장이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내가 슬퍼하니까 ‘최 선생, 나 좀 보시오. 난쟁이 똥자루 같지 않습네까’라고 해 웃지 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탈출 후 북에서 ‘다시 오지 않겠냐’고 제안했는데 거절했고 이후에는 북과 어떤 연락도 취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저세상에서 김 위원장이 남편(신상옥 감독)을 만나면 신 감독이 ‘잘못을 뉘우치고 함께 기도하자’고 할 것 같다”고도 했다.
‘통영의 딸’로 유명한 신숙자 씨의 남편 오길남 씨는 1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가족을 만날 가능성이 커졌다며 반색했다. 오 씨는 “이제는 가족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해도 되지 않겠냐”며 “정부가 더욱 주도권을 가지고 남북관계를 관리했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1987년 북한의 지령을 받고 대한항공 항공기를 폭파해 115명을 희생시킨 김현희 씨는 김 위원장의 사망에 대해 통쾌하면서도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씨는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기의 독재자가 죽어 통쾌하지만 KAL 폭파, 납치 등 그가 지은 죄에 대한 사과를 받지 못하게 돼 아쉽다”고 했다. 이어 김 씨는 “김일성이 죽었을 때는 북한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김정일이 죽은 것에 대해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까’ 기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북전단 살포 운동을 해 온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도 “김정일이 군림했던 40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북한 동포 300만 명이 굶어죽었는데 앞으로 경제를 개방한다면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 고통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간 후계자 수업을 받았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2년 만에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르게 돼 엄청난 견제를 받게 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북한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탈북자들과 실향민들은 통일이 앞당겨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내면서도 향후 정치·군사적 불안정 가능성을 우려했다. 심구섭 남북이산가족협의회 대표는 “북한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구심점이 무너졌으니 통일도 앞당겨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다만 북한 정권의 권력 승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북한 내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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