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으로 사회생활하는 여성이 그렇게 오랫동안 성폭행을 당하고도 신고를 안 했다면 강간으로 보기 어렵다.”
대전고법 형사1부는 지난해 12월 16일 스물여덟 살이나 어린 20대 여성을 5년간 성폭행하고 살해 협박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모 씨(56)에 대해 상습 강간 부분은 무죄라며 이같이 판시했다. 앞서 이 씨는 지난해 8월 24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강간 폭행 협박 등의 혐의가 인정돼 징역 15년에 전자발찌 부착 10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심에서 상습 강간이 무죄로 바뀌면서 징역 8년으로 크게 감형된 것이다.
1심 재판장은 이 사건에 대해 “피고인은 ‘강간이 아닌 화간’이라고 주장하지만 강압과 폭력, 협박이 아니고선 도저히 불가능한 관계”라고 밝혔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피해여성 박모 씨(28)가 이혼한 전 부인을 살해 협박한 혐의로 구속돼 수감 중이던 피고인에게 10개월의 복역기간 동안 70여 통의 편지를 보낸 점을 근거로 ‘자발적 관계’라고 판단했다. 재판장은 “편지에 ‘자기’ 등 애칭을 썼고 내용도 애절하다”며 ‘편지에 진정성이 없으면 출소 후 보복하겠다’는 협박 때문에 억지로 썼다는 박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여러 쟁점에서 배심원 9명이 참여한 1심과 다른 시각을 보였다. 피고인 이 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11세 나이 차가 나는 전처를 성폭행해 임신시킨 뒤 결혼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1심은 이를 감안해 “피해자를 강압적으로 성폭행한 뒤 그 이후에도 5년간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판단했지만 2심은 “사건과 무관하다”며 고려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신고 전 성관계나 폭행에 대한 증거를 수집한 것에 대해서도 1심은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봤지만 2심은 “반항을 포기할 정도로 억압돼 있었던 건 아니라는 증거”라고 봤다.
이런 판단을 토대로 2심 재판부는 이 씨가 박 씨를 처음 만난 2006년 여름 한 차례 성폭행한 점과 공기총 불법소지, 상해 등의 혐의만 인정해 1심보다 7년을 감경했다. 전자발찌 10년 부착도 무효화했다. 두 사람의 첫 성관계는 강간이지만 그 후 며칠 뒤부터 5년 간 이뤄진 성관계는 화간(합의된 성관계)이었다는 게 재판부의 결론인 셈이다.
피해자 박 씨는 “수백 번 신고를 하려 했지만 지인을 성폭행한 남성이 2년만 살다 나오는 걸 보고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못했다”며 “이 씨가 출소하면 어떤 보복을 해올지 몰라 판결이 이대로 확정된다면 이민을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상습 강간을 무죄로 판단한 2심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며 지난해 12월 21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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