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구의 한 대안학교에 다니는 이모 군(15)은 지난해 초까지 학교에서 친구들과 교사에게 폭력을 일삼으며 ‘문제아’로 찍혔던 아이였다. 하지만 그는 요즘 남을 돕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이 군은 지난해 3월부터 주말마다 홀몸노인을 위한 비산동 천사의집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주방과 식당을 오가며 일을 거들었다. 설거지를 하고 반찬 상자도 날랐다. 어르신의 말벗이 되는 것도 중요한 봉사활동 중 하나다. 이 군은 “누굴 돕는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다”고 했다.
이 군은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열린 사랑의 문자메시지 보내기 이벤트에도 참여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따뜻한 밥 대접하면서 보람을 느껴요. 세상에 빛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는 짧은 메시지였지만 진심이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아 1등을 차지했다. 그는 부상으로 받은 이불을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이 쓰시는 게 좋겠다며 다시 내놨다.
7일 이 무료급식소에는 이 군 또래의 학생 4명이 더 있었다. 이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여러 차례 정학을 당했고 결국 학교까지 그만둔 아이들이었다. 현재 이들은 대구의 한 대안학교에서 새 출발을 해 그간의 탈선을 반성하고 새로운 꿈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은 “나를 내세우기보다 남을 돕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한 자원봉사 덕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박모 군(17)은 중학교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친권을 포기해 갑자기 혼자가 됐다. 걸핏하면 반항심이 생겨 학교에서 주먹을 휘둘렀다. 박 군은 “봉사를 하다 만난 할머니들이 ‘고생 많지’라며 손을 잡아줄 때 나도 모르게 뭉클하다”고 했다.
교사를 때려 폭행 혐의로 입건까지 됐던 다른 이모 군(15)도 큰 변화를 맞고 있다. 화가 앞서서 물불 가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군은 “날 인정해준다는 사실에 뭐든 노력하는 사람이 됐다”며 “이제 모델이 되려는 새로운 꿈을 꾼다”고 했다.
중학교 때 인터넷 게임 중독 때문에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김모 군(18)도 “새로운 보람을 찾았다”며 활짝 웃었다. 김 군은 “봉사가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늘 외톨이였던 박모 씨(21)는 지금은 이 아이들을 이끄는 맏형 노릇을 한다. 그는 “봉사로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다”며 “큰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처음 봉사 왔을 때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을 보내던 천사의집도 요즘은 반기는 분위기다. 안천웅 대표(52)는 “학생들이 과거 일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가 기특하다”며 “세상을 등졌던 아이들이 다시 세상에 나와서 멋진 꿈을 꿀 수 있도록 옆에서 돕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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