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의 드림로드]맨발로 4시간 통학 아이들 “두 바퀴로 학교가는게 소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4일 03시 00분


제3세계 아이들에 자전거를 선물하세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동아일보 공동 캠페인

뷰악살라(앞줄 가운데)가 쌍둥이 남동생들의 손을 잡고 왕복 7km 등굣길을 걷고 있다. 전쟁의 기억 때문에 말수가 적던 세 남매는 학교를 다니며 부쩍 밝아졌다. 어린이재단 제공
뷰악살라(앞줄 가운데)가 쌍둥이 남동생들의 손을 잡고 왕복 7km 등굣길을 걷고 있다. 전쟁의 기억 때문에 말수가 적던 세 남매는 학교를 다니며 부쩍 밝아졌다. 어린이재단 제공
지난해 11월 28일 만난 비노자(14)의 집 마당에는 20루피(약 200원)짜리 복권이 한 장 떨어져 있었다.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비노자가 밥 먹을 돈을 아껴 산 복권에는 자전거가 그려져 있었다. 비노자는 “자전거가 2등 상품이었는데 결국 꽝이었다. 속상해서 그냥 버렸다”며 웃었다. 자전거가 필요한 이유는 단 하나.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다.

○ 맨발로 걷는 등굣길

비노자는 스리랑카 북부 킬리노치 지역 라마난타푸람 학교 9학년이다. 비노자의 일과는 오전 4시에 시작한다.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아 밤에는 공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날이 밝자마자 숙제를 한다. 오전 6시에 길을 나서 학교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8시. 왕복 8km를 매일 네 시간씩 걷는다. 내전 중 난민캠프에서 며칠간 의식을 잃을 정도로 황달을 앓은 적이 있는 비노자는 “햇볕 아래에서 걷다 보면 금방 어지럽기 때문에 길을 가다 자주 쉬어야 한다”고 했다.

인근 셸바나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뷰악살라(11)는 오전 7시에 학교로 출발한다. 27일 길을 나서는 그는 슬리퍼 차림, 일곱 살 난 쌍둥이 남동생 둘은 맨발이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약 3.5km로 왕복 2시간을 훌쩍 넘긴다. 좁은 마을길을 30여 분 걸으면 포장이 덜 돼 자갈이 굴러다니는 아스팔트길이 나온다. 모난 자갈돌을 맨발로 걷는 세 남매의 발은 상처투성이다. 어릴 적 폐 수술을 받은 첫째 남동생은 발달장애로 걸음이 늦다. 아침을 굶은 남매는 학교에 도착해 오전 10시 반에 세계식량기구 영양식으로 첫 끼니를 때운다. 이 학교 시바시탐파란 키시스와란 교장은 “학생 70% 이상이 걸어서 등교한다”며 “집 근처를 다니는 버스가 있더라도 하루 한두 대 수준이고 그나마도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끊기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 “의사가 되고 싶어요”

힘든 등굣길이지만 뷰악살라와 비노자는 한 번도 학교에 빠진 적이 없다. 공부 때문이다. 뷰악살라네 집은 흙벽에 흙바닥, 나뭇잎으로 엮은 움막이다. 어머니는 저혈압, 아버지는 폐와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 내전 중 총탄이 어깨를 관통해 밤마다 통증에 시달리는 큰언니가 막노동을 해 생계를 잇는다. 그나마도 일이 없을 때가 많다.

뷰악살라의 어머니 아니타 비약쿠마브 씨는 “지금이라도 뷰악살라를 다른 집에 보내 일을 시키면 형편이 나아질 수 있지만 그건 순간적으로 나아지는 것일 뿐”이라며 “아이들이 이런 삶을 반복하지 않길 바라기 때문에 일을 시키는 대신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한다”고 했다.

비노자의 가족은 여자 넷뿐이다. 내전 중 오빠가 군대에 끌려가자 아버지가 충격을 받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반군에서 돌아온 오빠는 피란 중 폭격에 목숨을 잃었다. 어머니는 골반에 부상을 입어 거동이 불편하다.

그런 비노자가 오전 4시에 일어나 집안일 대신 공부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난민캠프에서 아팠을 때 의사들이 ‘더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며 절 포기했었어요. 그때 병상에 누워 저 사람들보다 더 나은 의사가 돼 사람들을 돕겠다고 결심했어요.” 비노자의 어머니는 명석했던 죽은 아들 대신 비노자가 꿈을 이뤄주길 바란다.

스리랑카에 파견된 문상미 어린이재단 사회복지사는 “킬리노치 지역 부모들은 교육열이 높아 어려운 상황에서도 초등학교 졸업률이 97%에 달할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중학교 졸업률은 50%대로 뚝 떨어진다. 중학교는 등굣길이 훨씬 더 멀기 때문에 많은 학생이 지각과 결석을 반복하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고 결국 졸업하지 못하는 것이다.

○ 자전거는 꿈꿀 자유

킬리노치 지역에서 1만2000루피(약 12만 원) 정도인 자전거는 공립학교 선생님의 한 달 월급을 들여야 겨우 살 수 있다. 도로 대부분이 비포장인 데다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도로가 끊겨 자전거가 가장 효율적이고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이 지역은 학교 수업이 완전히 정상화되지 못해 학교 교사가 진행하는 방과 후 과외 수업을 받는 것이 보편적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는 비노자도 과외 수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과외 수업을 받으러 또 수 km를 걸어야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땐 어두워져 위험하기까지 하다. 비노자는 “자전거만 있다면 반드시 의사가 될 수 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꿈인 뷰악살라도 올해 중학교에 진학해야 하지만 남동생들을 학교에 데려다줄 사람이 없는 것이 걱정이다. 자전거를 타면 남동생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등교해도 학교에 늦지 않는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찬 아버지가 길에서 딴 망고를 시장에 팔러 갈 때나 큰언니가 일을 나갈 때도 쓸 수 있다.

뷰악살라에게 뭐가 필요한지 물었다. 한참 망설이던 뷰악살라가 말했다. “자전거요. 그런데… 저만 말고요, 꼭 다른 어린아이들도 많이 도와주세요.”
▼ 26년 내전 스리랑카 물 부족한 세네갈 자전거는 곧 ‘시간’ ▼

스리랑카는 1983년 싱할라족과 타밀족 사이 내전이 시작된 뒤 2009년 타밀족 반군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가 패배를 선언할 때까지 26년간 내전이 계속됐다. 2006년부터 내전이 격화돼 북부지역의 사회기반시설 대부분이 파괴됐다. 주민들은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 난민캠프 생활을 해야 했다. 2009년부터 주민들이 재정착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지역 주요 간선도로 60% 이상이 비포장일 정도로 여건이 열악하다.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버스는 하루 한두 대에 불과하고 비가 내리면 끊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1∼2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학생들이 1, 2교시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기가 시작되면 도로 상황이 더욱 나빠져 지각, 결석하는 학생이 늘어난다. 정상적으로 수업 진도를 나가기가 어려울 정도다.

세네갈과 우간다 등 아프리카도 내전의 영향으로 대부분 지역에 교통시설이 부족하다. 물이 부족한 데다 수도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아이들이 물을 길으러 왕복 4시간(약 8∼12km) 가까운 거리를 매일 걷는다. 보통 하루 평균 40L의 물을 나르는데 물을 길으러 가는 길은 위험한 산길이어서 맹수들의 타깃이 되기도 한다. 물을 길으러 가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거나 학교에 와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도 많다. 자전거 지원을 요청한 지역은 대부분 음식을 살 가게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립된 곳으로 생활필수품과 음식을 사거나 보건소에 가기 위해 10여 km를 걸어야 한다.

킬리노치(스리랑카)=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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