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대학부설 영재교육원 입학을 위한 영어영재부문 3차 테스트를 치르고 온 중1 남학생의 학부모 A 씨(38). 그는 시험을 마치고 나온 아들에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수학문제가 너무 어려웠어.”
수학문제? 무슨 소리인가. 열심히 영어공부를 해온 아들의 눈앞에 듣도 보도 못한 고난도의 수 추리력 문제라니. 응시부문과 전혀 다른 분야의 문제가 예기치 않게 등장하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영재시험을 위해 아들은 미국 뉴스채널 CNN과 영국 공영방송 BBC의 뉴스를 듣고 읽고 말하며 공부했다. 장래희망은 무엇인지, 왜 영어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답변을 영어로 준비하며 면접대비도 탄탄히 했다. 하지만 수학문제가 나올 줄이야!
일부 시도교육청 및 대학부설 영재교육원 합격자 발표 소식이 속속 들리는 요즘. 몇몇 학부모는 영재교육원 선발시험인 ‘영재성 검사’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영재교육원 입시과정은 다음과 같다. 1차와 2차는 각 학교에서 담임교사와 교과담당교사, 학교장이 3개월 동안 해당학생의 행동과 사고 과정을 지켜보는 ‘관찰선발’로 진행된다. 여기서 선발된 학생들은 원하는 지역교육청이나 대학부설 영재교육원에서 3차 영재성검사(지필고사), 4차 면접의 과정을 거쳐 최종 선발된다. 이때 3차인 영재성 검사에서 지원분야와 동떨어진 문제들이 고난도로 출제되면서 ‘선발과정이 공정하지 않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것.
지원분야와 무관한 고난도 문항이 영재성 검사에서 출제되는 이유는 뭘까? 서울의 한 초등학교 수학영재학급 교사는 “수학영재를 선발하는 시험에서도 수학문제는 전체의 20%정도밖에 출제되지 않고 나머지는 언어나 외국어능력을 측정하는 문제로 구성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수학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보인 학생이라도 ‘창의적인 문장을 작성하시오’와 같은 언어 문제를 맞닥뜨려서는 표현능력 부족으로 탈락하기도 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선발권을 가진 영재교육원 측의 항변도 일리가 있다. 특정 과목이나 유형에 국한된 문제가 해마다 출제되면 일부 사교육업체에서 문제들을 ‘문제은행’화시킨다는 것. 그러면 선행학습과 반복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영재가 입학할 수 있는데, 이는 영재교육원의 설립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최근 들어 영재교육원 입시경쟁이 과열되면서 이 같은 폐단이 발견돼 영재교육원 입장에서는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낼 수밖에 없다는 것.
영재교육원이 큰 인기를 끄는 이면에는 ‘스펙’ 쌓기를 노리는 일부 학생과 학부모의 의도도 숨어 있다. 영재교육원을 다녔다는 사실은 향후 특목고 입시에서 중요한 ‘스펙’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점수로 환산되어 가산점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재교육원에 다녔다는 사실은 학교생활기록부의 특기사항에 기입된다.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플러스 효과’를 발휘한다고 학부모들은 말한다. 중등과정 영재교육원의 한 교사에 따르면, 매년 12월에 특목고 합격 여부가 모두 결정되면 영재교육원 수업이 아직 진행 중임에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 학생도 적잖다고 한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영재교육은 ‘탁월한 재능을 가진 아동이나 청소년을 판별해 그들이 가진 능력과 잠재력이 최대한 계발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말한다. 과연 이런 풍토에서 진정한 영재교육이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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