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원 경희대 총장 “지식 습득의 방법 가르치는 것이 21세기 명문대학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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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7일 03시 00분


조인원 경희대 총장 인터뷰

“상상력과 창의력을 강조하는 시대에는 전공과 기초학문을 융합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조인원 경희대 총장은 “대학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 변화를 선도하는 교육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상상력과 창의력을 강조하는 시대에는 전공과 기초학문을 융합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조인원 경희대 총장은 “대학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 변화를 선도하는 교육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이 시대 대학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사라졌다. 세계적 명문대가 되려면 단순히 해외 명문대를 쫓아가는 게 아니라 대학만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조인원 경희대 총장은 12일 본보와의 인터뷰 내내 ‘대학의 역할’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경희대의 자랑거리를 늘어놓는 대신 대학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
“대학의 새 방향을 찾기 위해 해외 명문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고 해외 대학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보기도 했다. 국내 대학은 저마다 비슷비슷한 프로그램을 내놓는데 그것보다는 긴 호흡으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제시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06년부터 총장을 맡아온 조 총장은 지난해 경희대 본교·분교 통폐합과 교양교육 체제개편 등의 변화를 이끌었다.

―지난해 반값 등록금이 이슈가 됐다. 대학이 비싼 돈을 받지만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을 가르쳤다는 비판이 많다. 학생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얘기다. 한편으로 맞는 얘기지만 이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취업준비는 대학의 기능 중 하나이지 본령이 아니다. 지식과 기술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대학이 2, 3년간 현장 중심의 전문교육을 한다고 해도 얼마나 오래 활용할 수 있겠는가. 전문지식이란 스스로 현장에서 쌓아가야 한다. 학생에게 필요한 점은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이다. 학문적으로 따지면 기초학문을 강조해야 한다.”

―학생 수가 계속 줄어 대학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앞서나갈 전략은….

“우리 같은 종합대도 있고 KAIST나 포스텍 같은 전문 분야의 소규모 대학도 있다. 대학마다 형태나 특성이 다양하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모든 대학이 모든 것을 다 잘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학마다의 특성화 전략이 경쟁에서 앞서나갈 방법이다.”

경희대는 최근 인문학 교육을 강조하는 대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학부생의 교양교육을 총괄하는 기구인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설립했다. 신입생은 의무적으로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대학 교양수업 대부분이 백화점 식으로 나열된 과목 중에서 선택하는 방식이지만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중핵교과, 기초교과, 배분이수교과, 자유이수교과로 체계화됐다. 과목은 ‘인간의 이해’ ‘세계의 이해’ 등 핵심 과목과 생명, 자연, 사회, 평화, 역사 등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통합해서 구성했다. 강의당 학생 수가 20여 명이라 토론이나 첨삭지도를 하기 수월하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1년간 운영했는데, 성과가 어떤가.

“인문학 위주라서 초반에는 이공계 학생을 중심으로 너무 어렵다는 불만이 나왔다. 최근에는 학생들이 스터디 그룹을 많이 활용한다. 후마니타스 학생위원회라는 조직도 만들어 교육과정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연구 과제를 찾기도 한다. 굉장히 건강한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앞으로는 ‘지구시민’이 가져야 할 시민성에 더욱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유엔 산하 고등교육기구(UNAI)와 함께 유엔이 추진하는 글로벌 어젠다에 학생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다.”

―시민성 교육은 어떤 식으로 하나.

“후마니타스 교육체계 중에 ‘시민교육’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고통받고 소외받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교수 지도 아래 현장을 찾아가 해결책을 모색하는 식이다. 시민성을 키우고 나아가 지구의 고통과 수난의 현장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까.”

―대학 운영에 재정 확충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대학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대학은 사회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한다. 우리는 국립대와 사립대를 나눠서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대학을 공적기관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주립대와 사립대 모두 정부 지원을 받는다. 한국에서도 사립대가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공적기관이라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 사립대의 운영은 그만큼 투명해져야 한다. 그 다음에 정부가 국립대와 사립대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대학이 재정 확충을 위해 실패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할 수는 없다.”

―종합 발전전략을 수립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과거에는 대학 발전계획을 수립할 때 위원회를 만들어서 교수 몇 명이 참여해 결정했다. 지금처럼 대학 규모가 커지고 다양화된 시대에는 맞지 않는 방식이다. 이번에는 대학 본부에서 큰 비전과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44개 단과대와 대학원에서 자체 발전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학문 간 융합이 화두인데 특별한 계획이 있나.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강조했는데 선택은 다시 말하면 뭔가 배제한다는 얘기다. 그런 방식보다는 대학 본부가 5개 협력 분야를 제시하면 단과대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연계를 하도록 할 계획이다. 5개 분야는 인류문명, 의생명과학·바이오헬스, 미래과학, 문화예술, 사회체육이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단과대 융합으로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만들어 세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대학 구성원들끼리 협약을 맺어 화제가 됐다.

“지난해 말에 교수 직원노조 총학생회가 공동으로 미래협약을 선포했다. 대학은 모든 행정을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한다는 것을 전제로 구성원이 관심을 갖는 복지, 학습권, 교권의 문제를 열린 대화체계에서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는 대학과 구성원의 갈등이 계속된 진통의 역사였다. 대학과 구성원이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대학 발전이 큰 의미도 없거니와 제대로 될 수도 없다. 이번 협약문은 교수 직원 학생회가 각각 문안을 만들고 서로 돌려보면서 논의를 거쳐 만들었다. 구성원끼리 존중하는 대학이라는 인식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경희대에 대한 인식이 점점 좋아지는 듯하다.

“훌륭한 교수진을 많이 영입했다. 전임교수만 현재 1400여 명이 되고 비전임까지 하면 총 2800여 명이 된다. 연구 성과가 탁월한 교수는 재정적으로 뒷받침했다. 외국인 교수 비중은 전체 교수의 15%로 높아졌다. 세계적 순위가 더 높아지려면 대학에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교수진, 연구소, 교육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이는 대학만의 힘으로는 어렵다. 정부지원과 산학협력이 활성화돼야 한다. 미국 하버드대는 연간 예산이 10조 원에 이른다. 그런 대학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회적 과제다.”
현재의 경희대는
“서울-국제 캠퍼스 올해부터 통합… 순수학문-응용과학으로 특성화”

경희대는 교육 연구 실천이 결합된 ‘대학다운 대학’의 모범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캠퍼스 본관 전경. 경희대 제공
경희대는 교육 연구 실천이 결합된 ‘대학다운 대학’의 모범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캠퍼스 본관 전경. 경희대 제공
경희대는 올해로 개교 63주년을 맞는다. 글로벌 시대의 세계시민을 양성하겠다는 목표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5일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와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는 세계 평화의 날 30주년을 기념해 경희-유엔 산하 고등교육기구(UNAI) 국제회의가 동시에 열렸다. 인터넷으로 생중계된 회의에는 서울에서 3000여 명, 유엔본부에서 600여 명이 참석했다.

조인원 경희대 총장은 이날 회의에서 “다른 내일을 위해 고등교육 기관의 ‘세계시민교육’과 ‘지구봉사’를 지원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기구와 함께 대학이 학문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경희대는 세계시민을 양성하는 데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지난해 ‘경희지구사회봉사단(GSC)’을 만들었다. 전공과목과 연계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원하는 학내 기구다.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권장하기 위해서다.

2010년부터는 의료기관 발전계획도 진행하고 있다. 경희대의료원이라는 이름 아래 경희대병원, 치과병원, 한방병원을 통합 운영한다. 특히 한의학에 강점이 있는 대학답게 수술 이후 양·한방 병행치료, 한방 건강관리 등의 분야를 개척할 방침이다.

올해부터는 서울캠퍼스와 국제캠퍼스를 통합한다. 서울캠퍼스는 인문·사회, 의학, 기초과학 등 순수학문 중심으로, 국제캠퍼스는 공학·응용과학, 국제화 등 응용학문 중심으로 특성화할 방침.

이런 노력 덕분에 대외적인 평가가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잘 가르치는 대학을 뽑는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 11곳에 선정돼 정부 지원을 받았다. 또 지난해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교육역량강화사업 우수대학으로도 선정됐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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