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한달 용돈 41만원… “책 사는 데 3만원도 안쓴다” 80%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8일 03시 00분


남녀 대학생 281명 대상 문화생활 실태 설문조사

요즘 대학생들은 흔히 ‘88만 원 세대’로 불린다. 이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도 ‘반값 등록금’처럼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는 데 집중돼 있다. 하지만 대학 시절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문화적 소양을 쌓고 크고 작은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을 쌓는 시기다. 경제적 어려움을 헤아리는 만큼이나 이들이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동아일보는 10, 11일 남녀 대학생 281명을 상대로 문화생활 실태를 조사했다. 문화생활에 지출하는 비용과 시간, 그리고 구체적인 문화소비 실태를 물었다. 서울 소재 9개 4년제 대학(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서울교대 성균관대 숭실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의 학생들이 설문에 참여했다. 숫자로 풀리지 않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생 12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도 진행했다.

○ “1만 원짜리 공연도 비싸서 못 본다”

대학생들의 한 달 용돈은 평균 41만2775원. 이 가운데 4분의 1(10만2384원)을 문화생활비로 지출하고 있었다. 남학생(43만4551원)이 여학생(38만9558원)보다 용돈이 많았고, 문화생활 지출액도 10만7172원으로 여학생(9만7279원)보다 컸다.

문화생활비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영화 관람’(40.6%)이었다. 이어 ‘책 구입’(22.8%), ‘공연전시 및 스포츠 관람’(14.6%) 순이었다. 영화는 카드 할인 등으로 6000∼7000원에 볼 수 있지만 공연은 싼 경우도 1만 원 선 이상이기 때문에 “비싸서 못 본다”는 응답도 있었다.

임도연 씨(성균관대 영상학과 4년)는 “남자들은 여자친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문화생활비의 차이가 많이 난다. 여자친구가 있으면 함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없으면 컴퓨터로 내려받아 본다”고 전했다. 전영준 씨(연세대 건축학과 4년)도 “연애하면 과외를 하나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학생의 경우 영화(38.6%)와 책(25.5%) 말고도 게임(13.1%)에 돈을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업 듣고, 과제하고 그러다가 시간 되는 애들끼리 모여서 게임 한판 한다. 싸게 할 수 있고, 같이 할 수 있으니까. 당구 이런 건 비싸다. 술 먹는 건 말할 것도 없고.”(허자경·고려대 경제학과 4년)

○ “책은 한 달에 한 권, 베스트셀러 위주로”

“지난 3개월간 전공서적을 제외하고 몇 권의 책을 읽었느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평균 3.08권을 읽었다”고 답했다.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비율도 9.6%였다. 월평균 책을 사는 데 쓰는 비용은 ‘1만 원 미만’이 38.8%, ‘1만∼3만 원 미만’이 40.9%로 집계돼 10명 중 8명은 책을 사는 데 한 달에 3만 원 못 미치는 돈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절반 이상(54.8%)은 주로 도서관을 통해 책을 빌려보고 있었다.

염동혁 씨(서울대 국사학과 4년)는 “예전엔 대학생에 대한 이미지가 ‘지식인’이었지만 지금은 학생 스스로 ‘취업준비생’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책을 잘 읽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책 말고 재미있는 게 많아져서 그렇다”(전영준)는 해석도 나왔다.

설문에 응한 281명의 학생이 읽은 책으로 베스트셀러 목록을 꼽아봤다. 25명이 읽었다고 답한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1위를 차지했다. 2위가 김어준 씨의 ‘닥치고 정치’(16명), 3위가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11명)였다. 학생들은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르기보다 베스트셀러 위주로 본다”고 했다. 독서도 ‘스펙’에 도움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만 읽을 수 없다. 경제서, 인문서적 등 소위 뜨고 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김슬기·숙명여대 경영대 4년)

○ “하루 TV 82분 시청, 스마트폰은 끼고 산다”

대학생들은 하루 평균 138분을 문화생활에 쓰는데 이 중 82분을 TV 시청에 할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보는 프로그램으로 남(62.1%) 여(53.7%) 모두 예능 프로를 꼽았다. “TV는 수동적인 취미, 떠먹여주는 취미다.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다른 능동적인 취미를 즐기지 못해서 TV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허자경)

TV 시청 외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문화활동으로는 ‘컴퓨터 이용’(30.2%)과 ‘스마트폰 이용’(14.2%)을 꼽았다. 강지연 씨(서울대 영문과 4년)는 “잘 때 빼고는 거의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것 같다. 게임도 하고 바로바로 정보도 검색한다”고 말했다. 신하정 씨(고려대 경영학과 4년)는 “친구들끼리 만나도 서로 얼굴 안 보고 스마트폰만 보면서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 “놀아본 적이 없어 못 논다”

문화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학생들은 ‘시간 부족’(57.8%)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았고, 이어 ‘돈 부족’(20.9%), ‘필요성을 못 느껴서’(11.8%), ‘정보 부족’(9.5%) 순으로 답했다.

허자경 씨는 “파티라든가 자생적인 (놀이)문화가 있으면 좋겠는데 어려서부터 입시, 사교육 등의 경쟁으로 스스로 즐기는 문화를 배우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미국 대학을 졸업한 신가원 씨는 “미국에선 친구들과 만날 때 뭘 할지 미리 정하는데 한국 친구들은 ‘그냥 만나자’고만 해서 (문화생활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문화생활에도 연습이 필요하고, 대학 시절은 그 연습을 시작하는 좋은 시기”라고 조언했다. 윤소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문화생활 등 모든 것을 미뤄두지만 막상 취업을 하면 시간 관리가 더 어려워진다. 문화생활에도 학습이 필요하고, 관련 경력을 쌓아야 잘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유진룡 을지대 여가디자인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쫓기는 이유가 결국 ‘스펙 쌓기’ 때문인데 스펙이 결론적으로 인생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 시절은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기이고 이것은 다양한 독서를 통해 가능하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박고은 인턴기자 중앙대 불어불문학과 4년   
박민주 인턴기자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4년  
문혜빈 인턴기자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4년  
▼ 석달간 책 한 권 안 읽고… “시간 나면 술 마시는게 전부”라는 학생도 ▼
■ 설문 맡은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3명

‘2012년 대학생 문화생활 실태 조사’를 벌인 인턴기자들. 박민주, 박고은, 문혜빈 씨(왼쪽부터).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012년 대학생 문화생활 실태 조사’를 벌인 인턴기자들. 박민주, 박고은, 문혜빈 씨(왼쪽부터).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도서관은 공부하는 학생들로 빼곡했던 반면에 여가를 즐기는 동아리방은 썰렁했어요. 문화생활에 대한 질문을 했더니 ‘취업 준비에 바쁜데 무슨 문화생활이냐’고 되묻는 학생이 많았죠.”(박민주·24·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4년)

대학생들의 문화생활을 취재하던 동아일보 인턴기자들은 학생들의 ‘가난한’ 문화생활 실태를 목격하고 놀라워했다. “우리 또래가 문화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어떻게 즐길지조차 모르는 것 같다”는 것. 3명의 인턴기자는 서울 소재 9개 대학의 캠퍼스를 누비며 281명과 만나 설문조사를 하고 심층 인터뷰도 했다.

“‘시간이 나면 친구들이랑 술 마시는 게 전부다’라고 말하는 학생이 많았어요. ‘문화생활에 왜 음주가 포함되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문혜빈·23·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4년)

설문지에는 ‘지난 3개월간 읽은 책 제목을 모두 쓰시오’라는 문항도 있었다. 몇몇은 스마트폰에 저장한 도서 목록을 보고 꼼꼼히 썼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책 제목이 기억나지 않거나 아예 읽은 책이 없다며 난감해했다. “자기소개서에 취미와 특기 쓰는 칸을 보면 무얼 쓸지 몰라 당황하게 된다”는 학생도 있었다.

“설문을 마치고 나니 씁쓸했어요. 저 또한 읽고 싶은 책도 많고 하고 싶은 문화생활도 있지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미뤘었거든요. 앞으로는 인생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박고은·25·중앙대 불어불문학과 4년)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