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단장된 골프장, 아름드리 노송과 수백 년 수령의 은행나무로 들어찬 정원, 그리고 상큼한 공기….
과거 '현대판 아방궁'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세종재단의 전신 일해재단 영빈관이 18일 그 속내를 샅샅이 드러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구촌체험관으로 탈바꿈해 이날 일반에 공개된 일해재단 영빈관은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세종연구소에서 도보로 7¤8분 떨어진 산자락에 자리 잡은 100평 규모의 단층 건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3년 10월9일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으로 순직한 수행원 유족들의 생계 지원과 장학사업을 위해 국민 성금으로 일해재단을 설립한 뒤 2년 뒤에 건립됐으며, 부속 부지가 8만5900㎡(약 2만6000평)에 달한다.
이 영빈관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것은 전 전 대통령의 퇴임을 앞둔 1988년 초반. 일해재단 기금 강제모금 파문이 일면서 재단 측이 그 해 4월 취재진에게 단 한 차례 공개했던 것.
특히 같은 해 11월부터 시작된 국회 5공 비리 일해재단 청문회 과정에서는 전 전 대통령의 사저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출석 증인들과 의원들 간에 날선 공방이 오가기도 했다.
24년 만에 재차 모습을 드러낸 영빈관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했다. KOICA 건물 뒤편에 잣나무가 늘어선 숲길로 접어들면 활짝 열린 철제 대문이 방문객을 반긴다.
이 대문을 지나면 손질이 잘된 정원수와 노송들로 둘러싸인 450평 규모의 연못이 자리 잡고 있고, 영빈관 뒤편으로는 파3 짜리 3개 홀을 갖춘 골프장이 주변 풍광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빈관 정면 뜰에는 희귀수인 오엽송이 자태를 뽐내며 서 있고 유리 온실에 갇힌 수영장과 테니스장도 눈에 띈다.
영빈관 내부는 원래 고급 샹들리에와 등나무 가구, 외제 변기 등으로 꾸며져 있었지만 KOICA가 전시장으로 쓰기 위해 지난 3개월간 5억여 원을 들여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바람에 과거의 호화로운 모습은 모두 사라졌다.
이날 영빈관을 처음 찾았다는 조진태(50) 씨는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골프장과 넓은 정원을 보니 씁쓸한 마음이 든다"며 "뒤늦게 나마 이 곳이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지우고 우리로부터 원조를 받는 국가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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