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갈 짬이 없어 1년의 반은 사관학교 숙소에서 잔 것 같습니다. 숙소와 식당이 문을 닫는 주말에는 사무실 간이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며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죠.”
31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청년창업사관학교. 3.3m2(1평) 남짓한 공간에서 신용수 3D아이픽쳐스 사장(28)은 연신 자신이 만든 수중 3차원(3D) 카메라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2월 성균관대 영상학과를 졸업한 신 사장은 취업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물리치고 청년창업사관학교 1기생으로 입소했다. 졸업 작품으로 낸 3D 수중다큐멘터리가 큰 관심을 끌자 창업을 결정한 것이다.
영화 ‘아바타’를 보고 3D 영상에 푹 빠져 입체영상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는 “관련 서적을 찾고 전문가들을 쫓아다니며 매달린 끝에 결국 세계 최초로 3D 수중 카메라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신 사장은 자신이 찍은 3D 콘텐츠를 LG전자에 3500여만 원을 받고 판매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상용화에 성공한 수중 3D 카메라를 대당 2억 원에 팔고 있다. ○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는 이들
지난해 3월 문을 연 청년창업사관학교 1기생들이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이 학교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이 기존에 흩어져 있던 여러 창업 지원정책을 ‘선발→창업교육→코칭→사무실 임대 및 최대 1억 원의 사업비 지원’ 등 패키지 형태로 만들어 개교한 곳이다.
이곳에는 신 사장처럼 대학을 갓 졸업하고 창업에 뛰어든 이들도 있지만 번듯한 기업에 근무하다 틈새시장을 발견하고 창업에 나선 이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에서 휴대전화 디자인을 하던 한 입교생은 아이폰 사용자들에게 ‘토끼 귀’로 알려진 휴대전화 케이스를 개발해 지난해 1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LG전자 연구원 출신인 김용 사장은 휴대전화에서 희소금속을 빼내는 기술로 사업을 시작했고, 손담비 뮤직비디오 촬영에 참여한 김윤정 감독은 동영상 화면의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볼 수 있는 스마트패드용 앱(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창업사관학교 입교생들이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꿈꿀 수 있었던 것은 20여 명의 교수진이 ‘창업 코칭’을 하는 독특한 시스템도 한몫했다. 중진공에서 기업평가를 하거나 중소기업 대출을 맡았던 전 금융인, 과거 수차례 사업에 실패한 기업가들이 교수로 나서 인맥을 소개해주는가 하면 자신의 실패 경험을 토대로 ‘실패학’을 강의하고 있다. ○ ‘벤처캐피털 활성화’가 성공의 열쇠
창업사관학교 1기에는 1292명이 지원해 5.4 대 1의 경쟁을 뚫고 241명이 입교했다. 이 가운데 97명은 실제 제품 상용화에 성공해 총 14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550명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러나 모든 창업 도전자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29명은 중도에 학교를 떠나야 했다.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창업사관학교에 들어온 한 입교생은 “안정적인 직장을 잡아야지 왜 창업을 하느냐”며 부모님이 결사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포기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막상 시제품을 만들고 보니 이미 비슷한 제품이 있어서 특허분쟁에 휘말려 학교를 떠난 이도 있었다.
우철웅 중진공 과장은 “이보다 많은 입교생이 매달 보고서를 제출하고 두 번의 중간평가를 거치면서 도달해야 하는 기준에 못 미쳐 퇴교당했다”고 말했다.
현재 남은 212명의 1기생들 역시 졸업 후 ‘홀로서기’에 대한 두려움이 적지 않다. 가까운 대학이나 중진공 창업보육센터(BI)에서 사업을 이어가려고 하지만 원하는 BI에 입주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사업 밑천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신 사장은 “너도나도 투자자금 유치에 나섰지만 동기생 가운데 실제 유치에 성공한 이는 3명 정도에 그친다”고 말했다.
한정화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끼를 가진 이들이 정부의 지원으로 초기 창업에 나섰지만 이들이 안착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들의 장래성을 보고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국내 벤처캐피털 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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