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인천人, 인천을 말한다]<10>이귀례 규방다례보존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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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일 03시 00분


“茶문화의 본질은 나를 낮추는 것”

이귀례 이사장은 지난달 3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맞춰 아시아인들이 참석하는 차 대회를 열어 우리 차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규방다례보존회 제공
이귀례 이사장은 지난달 3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맞춰 아시아인들이 참석하는 차 대회를 열어 우리 차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규방다례보존회 제공
“저는 ‘푼수’입니다.” 이귀례 규방다례보존회 이사장 겸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83)의 첫 마디는 의외였다. 그는 차(茶)가 좋아 40여 년간 전국을 돌며 차의 맛과 예절을 소개해왔다. 사재를 털어가며 한국 차 문화를 알리는 전도사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우직하게 욕심 없이 외길을 걸어 온 그에게 차는 종교나 다름없어 보였다.

차 문화 예절운동은 인천의 자랑이 됐다. 그는 청소년에게 올곧은 심성을 길러주기 위해 제주도에서 민통선 대성동마을까지 달려가 한국 차의 우수성을 알리고 교육도 한다.

“어린이나 청소년은 아직 습관이 완성되지 않은 원석이기 때문에 차 문화를 빨리 익히고 이를 통해 일반 생활예절까지 배울 수 있습니다. ‘나를 낮추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정신’이 배어있는 차 문화가 학생들의 인성과 몸가짐 하나하나를 바꿉니다.”

그는 차 문화의 생활화를 강조한다. 옛 사대부집 여인들이 이웃과 친지를 불러 다회(茶會)를 열던 문화를 계승한 ‘규방다례’를 일반인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보급했다. 2002년 인천시 무형문화재 제11호 규방다례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그가 차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조선시대 동학운동에 참여한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지인들이 집에 오시면 어린 저에게 차를 대접하게 해 차 예절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습니다. 잊혀져 가는 전통 차 문화를 계승하고 싶었습니다.”

1973년부터 차를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성균관 유학당에서 다례법 등 차 문화 강의를 듣고 차 문화의 고전인 다경(茶經)을 비롯해 다신전(茶神傳) 등을 번역해가며 공부했다. “선조들은 손님에게 차를 대접할 때 꼭 자신이 먼저 맛을 보고 차가 괜찮은지 살펴본 뒤에 권했습니다.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선조들의 정신이 차 문화에 깃들어 있지요.”

커피 문화가 한국의 차 문화를 대표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차 문화 보급에 뛰어들었다. 1979년 한국차문화협회의 모체인 ‘한국 차인회’를 결성하고 1982년부터 인천지역 중고교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무료교육을 시작했다. 교육을 한 인원이 청소년과 성인을 합쳐 30만여 명에 이른다. ‘현대 차 생활 용어집’을 발간하고 차 예절을 교육하는 영상물을 만들어 보급했다. 1991년에는 한국차문화협회 설립을 주도했다. 이사장으로 해마다 인설차문화전과 차예절 경연대회를 연다. 현재 미국과 프랑스 등 해외지부 4개를 포함해 국내외 30개 지부에 3만여 명의 차인을 두고 있다. 협회에 매년 사재를 모아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는 민간 외교사절로도 유명하다. 1995년 독일을 시작으로 미국 일본 인도 중국 스리랑카 등 15개국에서 국제 차 문화 교류전을 열었다. 차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의복을 입고 함께 소개했다. 미국대사관과 영국대사관에서 특강을 했고 ‘국제부인회’ 등에 참석해 차 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공로로 2000년 10월에 문화훈장 보관장을 받았다. 2003년에는 대한주부클럽연합회가 선정하는 제35대 신사임당으로 추대됐다.

이 이사장은 1958년 동생(이길여 가천대 총장)이 인천에서 병원을 열면서 인천과 첫 인연을 맺었다. 54년여 인천에서 살아온 인천인이다 “당시 인천은 무척 가난했습니다. 초가집이 곳곳에 있었고 송현동 수도국산은 판잣집이 즐비했지요. 동생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치료비가 없어 해산물과 계란을 가져오기도 했어요.”

그에게 큰 꿈이 있다. “2014년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아경기대회에 맞춰 아시아인들이 참석하는 차 대회를 여는 겁니다. 규방다례의 발상지인 인천에서 차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자는 것이지요. 아시아 각국의 차 문화를 체험하고 다양한 차 음식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차별화된 인천의 콘텐츠를 보여주자는 것이지요.”

그는 인천이 아직도 문화가 척박하다고 말한다. “인천에 제대로 된 한옥이 없어요. 한옥을 지어서 한복 입은 여인들이 대청마루에서 차를 우려서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마당에서는 전통놀이가 열린다면 외국인들이 우리의 전통 가옥과 차 문화에 놀라지 않겠어요? 100층짜리 빌딩만 지을 것이 아니라 한옥을 지어서 우리 것을 알려야 합니다.”

인천 남동구 구월동 규방다례보존회 다례교육관에서 무료로 차 예절을 교육한다. 자연과 동물 등을 소재로 만든 다기도 감상할 수 있다. “저는 남은 생, 우리 차의 혼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겁니다. 우리 차의 맛과 멋을 즐기고 삶의 예절까지 배우고자 하는 분들은 언제든 오시길 바랍니다.”

박선홍 기자 su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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