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의대생들에겐 인턴 과정이 명문 대학병원 레지던트가 되는 사다리인데 그걸 걷어차겠다는 거 아닙니까.”
정부가 의사 인턴제를 2014년부터 폐지하기로 방침을 세우자 의대생들이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인턴제 폐지가 주요 내용인 ‘전문의 수련 및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정 고시 개정안’을 조만간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인턴의 교육적 효과가 떨어지고 고급 인력들이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건 국가적 낭비라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전국 의대생들은 “우리 의견이 완전히 배제됐다”며 지난해 12월부터 인턴 폐지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가톨릭대 관동대 영남대 전남대 충남대 등 현재 12개교 의대생이 동참했다. 다음 달 개강하면 참여 대학이 급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인턴 폐지가 대학의학회 등 유관기관과 논의해 나온 결론인 만큼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의대 졸업 후 1년간 거치는 인턴을 없애는 대신 현행 4년 과정인 전공의(레지던트)를 5년으로 늘리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의대 졸업 후 전공의로 바로 가면 전공 분야 훈련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의사고시에 실기시험이 포함돼 있어 인턴을 하지 않아도 진료 투입에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상당수 의대생은 인턴 기간에 5∼10개 분야를 순환근무하며 전공 선택 전 해당 분야를 미리 탐색하는 등 장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의대에서 배운 이론과 실무가 많이 달라 졸업과 동시에 전공을 택하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중소병원은 인턴이 없어지면 레지던트나 전문의를 늘려야 해 비용 부담이 커진다며 반대한다. 흉부외과 등
전공의가 기피하는 분야는 인턴마저 없으면 인력난이 가중될 거란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전공의가 되면 1년간 여러 분야를
도는 ‘공통 전공의’ 과정을 만들어 그런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연합 안치현 의장(서울대 의대 본과 3년)은 “정부가 당사자인 의대생 의견은 듣지 않고 인턴 폐지를
밀어붙이는 게 문제”라며 “인턴을 없애려면 여러 보완책이 필요한데 우리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반대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지방 의대-서울 의대 대립 양상
인턴 폐지 문제를 두고 서울 지역 의대생과 지방 의대생이 찬반으로 갈라서는 양상도 보인다. 지방 의대생에겐 인턴이 서울의 명문 대학병원 전공의가 되는 디딤돌이 되지만 서울 지역 의대생으로선 아쉬운 처지가 아니다.
경남지역의 한 의대 4학년생 유모 씨(24)는 “인턴 때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올라와 성실성을 인정받고 인맥을 잘 쌓으면 스펙이 좀 달려도 그 병원 레지던트로 많이 채용되는데 이젠 그런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병원에서 3년차 전공의로 근무하는 김모 씨(28)는 “인턴 하면서 레지던트 선배들의
승용차를 대신 주차해 주고 휴대전화를 충전해 주는 등 의사 업무와 무관한 잡일이 많았다”며 “무의미한 고생을 뭐 하러 1년씩이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유명 대학병원 관계자는 “학업 능력과 실무 능력은 별개이기 때문에
지방대 출신이라도 순발력 있고 착실한 인턴은 전공의로 적극 채용해 왔다”며 “인턴이 없어지면 전공의 채용 때 아무래도 출신 대학과
학점, 의사고시 점수 등 계량적 요소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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