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광주 분원初 안준철 교장 “모양이 때로는 조금 어긋나도 굳기전엔 고칠수 있단다, 힘내”

  • Array
  • 입력 2012년 2월 18일 03시 00분


제자들 얼굴상 직접 빚어 8년간 졸업선물한 초등교장선생님

분원초등학교 안준철 교장이 만든 졸업생 얼굴상 22점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전시돼 있다. 관람객이 흥미롭게 얼굴상을 살펴보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분원초등학교 안준철 교장이 만든 졸업생 얼굴상 22점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전시돼 있다. 관람객이 흥미롭게 얼굴상을 살펴보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학교폭력도 결국 사제 간의 대화 부족 때문 아닐까요. 아이들 얼굴을 빚으려면 자주 만나고 얘기를 나누게 돼서 참 좋아요.”

경기 광주시 분원초등학교 안준철 교장(60)은 17일 졸업하는 제자 22명 전원에게 특별한 선물을 전달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선물은 찰흙으로 직접 빚은 학생들의 테라코타 얼굴상이다. 그가 학교장으로 처음 부임한 2005년 시작한 일이다.

안 교장은 “흙을 통해 제자들에게 말을 건다”고 했다. 그는 학기가 시작하는 3월 초부터 교장실 한쪽에 있는 전용 작업대에서 ‘얼굴상’ 제작을 시작한다. 하나를 완성하는 데 한 달가량 걸린다. 그의 작업은 생활기록부에 드러나지 않는 제자들의 관심사와 고민을 파악하는 시간이다. 안 교장은 처음에는 사진으로 기초 작업을 하고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 학생들을 수시로 교장실로 불러 함께 이야기한다.

개그맨이 꿈이라는 졸업생 김재준 군(12)은 “처음에는 교장실에 가는 게 어색했는데 자꾸 가다 보니 편해졌어요. 나중엔 교장선생님께 제 얼굴상에서 턱을 더 작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도 하고 그랬어요”라며 웃었다.

교원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지만 본격적으로 인물상을 빚어본 적은 없었던 터라 안 교장도 초기엔 작업하는 데 애를 먹었다. 평소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작업이 막힐 때는 스트레스를 받고 전문가와 상담한 적도 있다. 그가 스스로 내린 진단은 학생들에 대한 관심 부족이었다. 안 교장은 “제자들의 행동과 말투, 모습에 더 관심을 두고 관찰할수록 얼굴상이 실제와 가까워졌다”고 했다.

큰 사회 문제로 지적된 학교폭력에 대해 안 교장은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 학생 수가 많은 학교일수록 교사들이 제자와 더 자주 대화하고 수시로 교내를 살펴 학교폭력의 감시카메라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17일 경기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분원초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이 각자 만든 도자기 작품을 들고 안준철 교장(뒷줄 가운데)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안 교장은 학생 얼굴을 도자기로 만들고, 도자기 만들기도 직접 가르쳐왔다. 광주=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7일 경기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분원초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이 각자 만든 도자기 작품을 들고 안준철 교장(뒷줄 가운데)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안 교장은 학생 얼굴을 도자기로 만들고, 도자기 만들기도 직접 가르쳐왔다. 광주=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아이들은 멋진 작품이 될 가능성을 품은 흙 반죽과 같습니다. 때로 모양이 삐뚤어도 굽기 전이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어요. 학생들이 잠시 어긋난 길을 가더라도 원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도록 어른들이 먼저 다가가야죠.”

실제로 그가 교장으로 부임한 뒤 이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이나 왕따 문제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전교생 117명 가운데 외부 학생 비율이 84명에 이르는 것도 학교 분위기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이나 경기 성남시 분당 등 주변 지역에서 많은 학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학부모 이현자 씨(44·여)는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할 정도로 열정이 있다면 학교폭력이 생길 수 없다”고 했다.

올해 분원초 졸업식에서는 예년 같은 ‘얼굴상 증정식’이 열리지 못했다. 아이들의 얼굴상 22점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세라믹스 코뮌’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 교장은 26일까지 예정된 전시가 끝난 뒤 27일 오후에 졸업생들을 학교로 불러 선물 상자에 넣어 포장한 얼굴상을 직접 전달할 예정이다.

광주=고현국 기자 mc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