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도 결국 사제 간의 대화 부족 때문 아닐까요. 아이들 얼굴을 빚으려면 자주 만나고 얘기를 나누게 돼서 참 좋아요.”
경기 광주시 분원초등학교 안준철 교장(60)은 17일 졸업하는 제자 22명 전원에게 특별한 선물을 전달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선물은 찰흙으로 직접 빚은 학생들의 테라코타 얼굴상이다. 그가 학교장으로 처음 부임한 2005년 시작한 일이다.
안 교장은 “흙을 통해 제자들에게 말을 건다”고 했다. 그는 학기가 시작하는 3월 초부터 교장실 한쪽에 있는 전용 작업대에서 ‘얼굴상’ 제작을 시작한다. 하나를 완성하는 데 한 달가량 걸린다. 그의 작업은 생활기록부에 드러나지 않는 제자들의 관심사와 고민을 파악하는 시간이다. 안 교장은 처음에는 사진으로 기초 작업을 하고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 학생들을 수시로 교장실로 불러 함께 이야기한다.
개그맨이 꿈이라는 졸업생 김재준 군(12)은 “처음에는 교장실에 가는 게 어색했는데 자꾸 가다 보니 편해졌어요. 나중엔 교장선생님께 제 얼굴상에서 턱을 더 작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도 하고 그랬어요”라며 웃었다.
교원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지만 본격적으로 인물상을 빚어본 적은 없었던 터라 안 교장도 초기엔 작업하는 데 애를 먹었다. 평소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작업이 막힐 때는 스트레스를 받고 전문가와 상담한 적도 있다. 그가 스스로 내린 진단은 학생들에 대한 관심 부족이었다. 안 교장은 “제자들의 행동과 말투, 모습에 더 관심을 두고 관찰할수록 얼굴상이 실제와 가까워졌다”고 했다.
큰 사회 문제로 지적된 학교폭력에 대해 안 교장은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 학생 수가 많은 학교일수록 교사들이 제자와 더 자주 대화하고 수시로 교내를 살펴 학교폭력의 감시카메라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멋진 작품이 될 가능성을 품은 흙 반죽과 같습니다. 때로 모양이 삐뚤어도 굽기 전이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어요. 학생들이 잠시 어긋난 길을 가더라도 원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도록 어른들이 먼저 다가가야죠.”
실제로 그가 교장으로 부임한 뒤 이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이나 왕따 문제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전교생 117명 가운데 외부 학생 비율이 84명에 이르는 것도 학교 분위기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이나 경기 성남시 분당 등 주변 지역에서 많은 학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학부모 이현자 씨(44·여)는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할 정도로 열정이 있다면 학교폭력이 생길 수 없다”고 했다.
올해 분원초 졸업식에서는 예년 같은 ‘얼굴상 증정식’이 열리지 못했다. 아이들의 얼굴상 22점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세라믹스 코뮌’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 교장은 26일까지 예정된 전시가 끝난 뒤 27일 오후에 졸업생들을 학교로 불러 선물 상자에 넣어 포장한 얼굴상을 직접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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