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기자, 프로경기 불법 베팅사이트 직접 체험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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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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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득점-3점슛 등 11개 베팅… 6시간만에 30만원 털려

《 4시간 전 30만 원이었던 종잣돈은 10만 원으로 줄어 있었다. 이제 마지막 베팅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와 버밍엄FC의 경기가 예정돼 있었다. 단순 득점으로 승·무·패를 정하는 방식은 당첨돼도 받는 돈이 많지 않았다. 20만 원을 만회하려면 모험이 필요했다. 양 팀 득점의 합이 특정 기준점수를 넘는지 여부를 맞히는 베팅에 돈을 걸면 배당률이 훨씬 높았다. 》

이날 두 팀의 기준점수는 2.5점. ‘첼시가 이기고 양 팀 득점의 합은 2.5점이 넘는다’에 10만 원을 몰아 걸었다. 첼시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명문 클럽이고 약체 버밍엄FC는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어 1골쯤은 넣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배당률은 1.98. 예상이 적중하면 단번에 19만8000원을 벌 수 있었다. 저녁도 거르고 경기에 몰입했다. 그런데 아뿔싸. 전반전은 버밍엄FC가 먼저 한 골을 넣고 끝났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 6시간 만에 사라진 30만 원

돈을 받고 경기 내용을 조작한 프로 선수들에 대한 수사가 한창이지만 승부 조작의 온상이 된 불법 베팅 사이트는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기자는 18일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체육복권인 ‘스포츠토토’ 관련 온라인 카페를 검색하다 눈에 띄는 댓글을 발견했다. ‘고배당에 안전한 입출금’이란 문구 옆에 한 사이트 주소가 나와 있었다. 사설 스포츠 베팅 사이트였다. 회원 가입을 하자 ‘2012년 1월 25일 입금계좌 변경 안내’라고 쓰인 공지문이 떴다. 경찰의 단속에 대비해 계좌를 수시로 바꾸는 불법 사이트였다. 합법인 스포츠토토는 베팅액이 10만 원으로 제한돼 있지만 불법 베팅 사이트는 무제한으로 돈을 걸 수 있고 베팅 방법도 훨씬 다양했다. 취재비로 받은 30만 원을 사이버머니로 교환했다.

먼저 남자 프로농구 전주 KCC와 원주 동부의 경기에 돈을 걸었다. 실제 프로선수들이 경기 내용을 조작할 때 자주 한다는 ‘첫 득점’ 게임과 ‘첫 3점 슛’ 게임을 택했다. 첫 득점을 한 팀과 3점 슛을 처음으로 성공시킨 팀을 맞히는 게임이었다. 베팅 가능액은 5000원∼100만 원. 둘 중 하나는 맞을 거란 생각에 각각 5만 원을 걸었다. 팀 전력과 무관한 베팅이라 순전히 운에 맡겨야 하지만 경기 시작 직후 당첨 여부를 알 수 있어 특유의 짜릿함이 있었다. 두 개 모두 엇나가 한순간에 10만 원을 잃었다.

4시간 동안 11개의 베팅을 시도했다. 강팀에 불리한 조건을 줘 베팅이 강팀에 치우치지 않도록 분산시키는 핸디캡 방식이나 양 팀 득점의 합이 기준 점수를 넘는지를 맞히는 ‘언더·오버’ 방식 등 베팅이 복잡할수록 배당률이 높았다. 몇 번의 당첨과 낙첨 끝에 수중엔 10만 원이 남았다. 회심의 마지막 베팅을 했던 첼시와 버밍엄FC의 경기는 1 대 1 무승부로 끝났다. 승부도, 득점의 합도 예상과 달랐다. 6시간 만에 30만 원을 모두 날렸다.

○ 年 13조 원 규모에 단속은 미미


불법 도박사이트에서 돈을 날리는 사례는 많다. 베팅 결과가 좋더라도 일부 사이트들이 배당률을 조작하거나 이용자의 베팅 명세를 조작해 당첨금을 빼돌리는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프로선수들과 연계된 브로커들이 유포한 잘못된 정보를 믿고 베팅을 했다가 거액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는 1000개가 넘고 연간 거래 규모는 최고 13조 원 정도로 추정된다. 정부는 승부조작에 가담하거나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자에게 7년 이하 징역이나 7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고 있다. 사이트 이용자도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다스릴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처벌을 강화해도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이트 운영자들이 서버를 대부분 해외에 두고 있고 수시로 사이트를 옮기면서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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