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한마을에서 태어나 함께 산 사촌동생은 고기를 참 좋아했어요. 만나면 삼겹살이니 갈비니 다 사주려고 했는데, 그 평범한 일이 우리에게는 이렇게 어려운 일이네요.”
5년 전 탈북해 한국에 들어온 새터민 이철진(가명) 씨는 20일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헤매고 있을 혜진이(가명)에게…’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꾹꾹 눌러 쓰며 말했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될 위기에 처한 동생 생각에 며칠째 잠도 못 자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그는 ‘다 잘될 거다. 희망을 갖고 기다리면 다시 만나 고향에서 함께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밤새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정성을 다해 글을 써 내려갔다.
지난해 그는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누구보다 자신을 따랐던 사촌 여동생 혜진 씨가 고향인 함경남도를 떠나 중국 지린(吉林) 성 창춘(長春)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릴 적부터 애교가 많고 특히 이 씨를 보면 “오빠” 하고 부르며 학교까지 따라오던 동생이었다. 하지만 곧 만날 줄 알았던 혜진 씨는 그 뒤 연락이 끊겼다. 브로커까지 동원해 행방을 찾았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소식이 끊긴 지 몇 달이 지난 14일 이 씨는 가판대 위에 놓인 신문을 보고 주저앉았다. 탈북자들이 북송될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를 본 뒤였다.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보니 동생도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탈북자는 3대를 멸족시키겠다고 했다는 북한 측 이야기를 들은 터라 동생이 시범 사례가 되지는 않을까 가슴을 졸였다.
그런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16일부터 한 온라인 사이트(www.change.org/petitions/save-north-korean-refugees-savemyfriend)에서 시작된 탈북자 북송 저지 서명운동에 전 세계 2만여 명이 동참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수록 중국 정부도 탈북자의 북송을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힘을 내기로 했다. 이 씨는 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아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썼다.
동생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기자에게 전한 그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아직 동생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못 했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다던 동생을 다시 만나면 꼭 사랑한다고, 이제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발 관심을 가져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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