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연 씨 美아파트 구매대금 의혹 ‘13억 돈상자’ 전달한 과천역 인근 비닐하우스촌 가보니
방향감각 잃을만큼 복잡,기억 힘든 장소 선택한듯… ‘선글라스男’ 아직 오리무중
“내가 빌린 차에 그분을 태웠습니다. 그가 시키는 대로 우회전, 우회전하니 비닐하우스가 있는 한적한 곳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길가에 사과상자와 라면상자가 섞여서 일곱 개가 쌓여 있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 씨의 미국 아파트 구매 의혹사건 제보자 이모 씨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3억 원(100만 달러)이 든 돈상자를 전달받은 경위를 이렇게 설명해 왔다. 2009년 1월 10일 오전 10시경 경기 과천역에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50, 60대 남성’을 만난 뒤 그의 지시에 따라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으로 가서 돈상자를 옮겨 실었다는 것이다.
과천시 대공원 사거리에서 양재 나들목으로 가는 과천-의왕고속화도로 구간 5km 주변에는 꽃과 채소 등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수천 개가 설치돼 있다. 이 비닐하우스 단지의 면적은 6km²로 각각의 농원이 운영하는 검은색, 흰색의 비닐하우스가 밀집해 있다. 비닐하우스 단지를 마주한 양재천 북쪽 우면산 밑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서초보금자리주택 신축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 검사장)는 이 씨에게 13억 원의 돈상자를 건넨 의문의 남성이 미리 이곳 주변 지형을 살핀 뒤 향후 이 씨가 쉽게 기억할 수 없는 장소를 택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이 비닐하우스 단지 안에선 방향이 쉽게 구분되지 않고 자칫 길을 잃을 가능성도 높다.
특히 이 남성은 이 씨가 미국에서 오래 살아 과천역 주변 지리를 잘 알지 못하고 좁은 대지에 촘촘히 들어선 비닐하우스가 생소한 점 등을 이용해 이곳을 접선장소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돈상자를 건넨 때는 인적이 드문 토요일 오전이어서 사람들의 눈을 쉽게 피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돈을 비닐하우스 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과상자 등에 나눠 담은 것도 다른 사람의 의심을 피하기 위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007 작전’처럼 돈상자 전달이 주도면밀하게 이뤄졌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 씨가 돈을 건네받은 곳의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닐하우스 내부가 아닌 길가에서 돈을 전달한 데다 이 씨가 비닐하우스 주변이라는 것만 기억할 뿐 특정한 장소를 지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주 검사와 수사관 5, 6명이 비닐하우스 단지를 돌아봤으나 돈을 건넨 정확한 장소를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이 ‘선글라스를 낀 남성’의 정체를 밝히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 검찰은 이 씨가 과천역에서 이 남성과 만나 돈 전달 장소로 함께 이동할 때까지 비닐하우스 단지에서 돈상자를 지킨 공모자가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13억 원 송금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 경모 씨가 귀국하면 이 남성의 신원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고 귀국을 종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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