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가 “변호사 영입합니다” 공개 채용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5일 03시 00분


변호사들 취업난 속 사법연수원 홈페이지에 광고
“대놓고 모집” 발끈… 辯協 “변호사법 위반땐 고소”

새내기 변호사의 취업난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 법무사가 공개적으로 변호사 채용 공고를 냈다. 그동안 사건 수임을 잘하는 유력 법무사들이 젊은 변호사를 암암리에 고용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이번처럼 공개적으로 채용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기존 변호사들이 “변호사법 위반”이라며 반발하고 나섰지만 매년 로스쿨 졸업생을 포함해 2000명에 가까운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는 점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경기 수원시의 정모 법무사는 지난달 28일 사법연수원 홈페이지 진로정보센터 게시판에 “소송사건이 다소 많은 관계로 주사무실을 경영할 변호사를 영입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정 법무사는 “법무사인 저는 영업활동 및 거래처 관리, 사건 유치를 위해 사무실 내근을 할 수 없는 관계로 소송업무 및 제반업무를 할 수 있는 소송대리인이 절실히 필요합니다”라며 “다양한 사건과 외국인 소송업무를 접할 수 있고, 근무에 필요한 제반 여건은 전부 갖춰져 있으니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또 지원자격 조건으로 “학력과 연령은 무관, 경력은 신입, 어학은 영어와 중국어”를 내세웠다. 정 법무사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20여 명의 변호사가 지원해 그중 한 명을 선발했다”고 밝혔다.

정 법무사 측은 채용과정이 끝난 후 글을 삭제했지만 이 글은 조회수가 600건을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글은 변호사들의 비공개 인터넷 커뮤니티 ‘율담’에 옮겨져 1100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글에 20여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 가운데 변호사들은 “대놓고 변호사법을 위반하는 광고를 하다니 고발하겠다”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변호사법 34조 4항은 “변호사가 아닌 자는 변호사를 고용하여 법률사무소를 개설·운영하여서는 아니 된다”, 5항은 “변호사가 아닌 자는 변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업무를 통하여 보수나 그 밖의 이익을 분배받아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에 “앞으로 법무사에게 고용되는 로스쿨 변호사들이 많이 생길 것 같다”는 등 변호사들의 취업난을 인정하는 댓글도 있었다.

정 법무사는 “고용이 아니고 함께 협력하는 관계일 뿐”이라며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실정법을 어겨서야 되겠느냐”고 반박했다. 그는 “법무사와 변호사의 일을 명확히 구분해 일할 것”이라며 “변호사들이 반발하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로스쿨 시대에 변호사들의 취업난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글이 올라온 공간이나 내용을 고려할 때 고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이 건을 19일 열리는 상임이사회에서 의제로 다룰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사실관계를 조사해 변호사법 위반사실이 드러나면 검찰에 고소·고발하고 해당 지방변호사협회에도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연평균 1800만 건 안팎이다. 하지만 개업 변호사 수는 2001년 4618명에서 2012년 3월 현재 1만1410명으로 갑절 이상으로 늘었다. 올해 사법연수원 수료생 취업률이 40.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국민권익위원회가 올해 2월 변호사를 6급으로 채용하겠다는 공고를 내자 7명이 지원해 3명이 합격했다. 그러나 일부 변호사가 반발해 합격한 3명 중 2명이 임용을 포기하기도 했다. 최근 인천시도 변호사를 6급으로 채용할 방침을 정해 변호사 사회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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