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사생결단 사생판 뒤, 사선곡예 사생택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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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결단 사생팬 뒤, 사선곡예 사생택시
철부지팬 탈선 부추기고 외국인 한류팬엔 바가지 질주

사생팬이 가는 곳엔 언제나 사생택시가 따른다. 15일 오후 한 음악 프로그램이 생방송으로 진행된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CJ E&M 센터 인근. 가수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을 한 택시 운전사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사생팬이 가는 곳엔 언제나 사생택시가 따른다. 15일 오후 한 음악 프로그램이 생방송으로 진행된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CJ E&M 센터 인근. 가수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을 한 택시 운전사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공연이 끝났다. 인기 아이돌 그룹이 밖으로 나오자 일대는 아수라장이 된다. 연예인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려는 팬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공연 관계자들. 그사이 아이돌 그룹이 재빠르게 승합차에 오른다.

겨우 한숨을 돌린 매니저가 승합차 시동을 거는 순간 느닷없이 택시 수십 대가 주변을 둘러싼다. 승합차가 출발하자 택시들도 뒤를 따른다. ‘택시 부대’는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며 팬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간다. 이 과정에서 여학생 팬이 택시에 치일 뻔한 아찔한 장면까지 연출된다.

승합차가 공연장 밖으로 나오자 본격적인 추격전이 시작된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 양보란 없다. 고속도로에선 시속 160km를 넘나들고, 서울 도심에선 역주행까지 불사하는 곡예 운전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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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기만 해도 요금은 올라가

영화의 한 장면일까. 그렇지 않다. 인기 아이돌 가수 주변에선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최근 아이돌 그룹 ‘JYJ’가 이른바 ‘사생팬(私生fan·특정 연예인의 사생활을 알아내기 위해 밤낮없이 쫓아다니는 극성팬)’들로 인해 겪은 고통을 기자회견에서 밝히면서 사생팬의 존재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JYJ가 밝힌 사생팬의 행동은 충격적이다. 개인정보를 도용해 통화 명세를 조회하거나 자동차에 위치추적장치를 다는 것은 기본. 무단으로 집에 침입해 개인 물건을 훔치거나 자고 있는 멤버에게 키스까지 시도한 팬도 있다.

그런데 사생팬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대상이 또 있다. 바로 ‘사생택시’. 사생팬을 전문적으로 실어 나르는 택시로 일명 ‘사택’으로 불린다.

JYJ의 김재중은 트위터에 “돈 때문에 우리가 없어도 ‘찾았다’고 하고, 빈 택시로 연예인들만 찾아다니면서 팬들에게 연락하는 사생택시가 더 악질”이라고 썼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 역시 “사택만 없어도 사생팬이 저렇게 기승을 부리지는 못할 것”이라며 “어린 사생팬들에게 기생하는 사택에 더 불편한 시선이 가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일부 택시 운전사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감수하면서도 사생팬의 발 노릇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연예기획사 앞에서 만난 택시 운전사 박모 씨(35). 그는 “사택에만 전념하는 기사들이 서울에만 100명이 넘을 것”이라면서 “나는 여유가 있을 때만 사택을 하는 ‘반(半)택’쯤 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박 씨가 사택을 할 때 하루에 버는 수입은 30만∼40만 원 선. 그는 “4명 정도 태우고 다니면 5시간에 20만 원을 받는데 보통 그런 식으로 두 타임을 뛴다”며 “초짜 사생팬에겐 더 받고 단골에게는 3만∼4만 원 정도 할인을 해 줄 때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택시 운전사 A 씨는 사택을 하는 이유로 “일반 기사 노릇 하는 것보다 편해서 좋다”고 했다. 보통 시간제로 돈을 받기에 기획사, 방송사, 미용실, 숙소, 음식점 등 앞에서 대기만 하고 있어도 요금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 가끔 지방 공연이라도 있을 때면 왕복 요금으로 10만∼20만 원씩 목돈 챙기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 해박한 정보력으로 사생팬 유혹


이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만난 사생팬 이모 양(16)의 휴대전화엔 사택 운전사 전화번호만 12개가 저장돼 있었다. 이 양은 사생팬 초기 단계엔 대중교통을 이용해 연예인의 소속사, 숙소 정도만 ‘순례’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2년쯤 지난 지금은 사택을 대절해 하루 종일 스타를 쫓는다. 다른 사생팬과의 경쟁이 심해지고, 사생 행위 자체에 중독이 돼 더 많은 걸 바라다 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해 못 견디겠다는 게 이유다.

사택과는 어떻게 연결이 되냐고 묻자 “일단 아무 택시나 잡아타고 연예인을 쫓는다. 이때 운전사가 운전을 잘하거나 추적에 성공하면 먼저 제안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개의 사생팬들은 자신들의 생리를 잘 아는 전문 사택의 정보를 공유해 집중적으로 이용한다. 보통 단골 사택 여러 대를 돌려가며 이용하는데 이렇게 드는 택시 비용만 1인당 한 달에 적게는 60만∼70만 원, 많게는 200만 원까지 든다고 한다.

사택들은 이런 사생팬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노련한 사택 운전사들은 사생팬 못지않은 해박한 정보력으로 그들을 유혹한다. 실제 방송사와 공연장 주변엔 연예인의 차번호를 안다고 외치거나 화려한 ‘사택 경력’을 내세우며 호객 행위를 하는 운전사들이 항상 있다. 몇몇 운전사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사생팬이나 연예인의 이동 정보를 공유하며 공생을 도모한다.

최근 한류 열풍으로 한국을 찾는 일본, 중국 팬들이 늘어나면서 사택들의 경쟁은 더욱 뜨거워졌다. 20대 이상이 대부분인 외국 팬은 국내 ‘정찰가’보다 3배 이상 요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VIP 고객. 한 국내 사생팬은 “번역기를 돌리거나 심지어 간단한 외국어 회화까지 공부해가며 외국인 사생팬을 모시려는 사택 운전사들도 있다고 들었다”면서 “우리 입장에선 왠지 전용 택시를 뺏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진 않다”고 말했다.

○ ‘대리 스토커’ 행위도 불사


사생팬을 돕는 것 이외에도 사택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은 많다.

일단 위험하다. 연예인 차량은 사택을 따돌리려 속도를 높이고, 사택은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무리하다 보니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박 씨는 “한번은 팬 미팅 뒤 숙소로 돌아가는 연예인 차량을 추격하다 차선 변경 과정에서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차를 놓치면 돈을 절반만 받겠다고 큰소리친 상황이라 그런 상황에서도 무조건 차를 몰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금을 비싸게 받는 이유도 사실 과속 카메라에 걸릴 때 드는 벌금은 물론이고 위험수당까지 다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14일 오전 1시경 직접 차를 몰고 역삼동 부근에서 연예인의 승합차를 쫓는 사택의 뒤를 쫓아봤다. 하지만 5분도 되지 않아 추격 실패. 시속 60km가 제한속도인 도심 한복판에서 기본 100km 이상으로 달리는 데다 신호등은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사택을 따라잡기에는 운전 경력 10년인 기자의 간이 너무 작았다.

JYJ는 기자회견에서 “택시를 타고 우리 차를 쫓아오다 얼굴 한 번 보겠다며 고의 접촉사고를 낸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때론 사생팬에 대한 ‘과잉 충성’으로 선을 넘는 사택도 많다. 연예인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며 사생팬을 부추기는 행위는 ‘양반’에 해당된다. 사택 운전사가 사생팬을 대신해 남성 전용 사우나에 들어가 연예인의 사진을 몰래 찍는 등 ‘대리 스토커’나 다름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취재 도중 한 사생팬은 충격적인 얘기를 해줬다. “요금이 비싸잖아요. 보통 용돈을 받거나 ‘알바’를 뛰면서 해결하는데 택시 운전사한테 성매매까지 한 친구도 있다고 들었어요.”

어린 학생들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게 부끄럽진 않을까. 잠깐 인터뷰에 응한 40대 후반 사택 운전사 A 씨는 이렇게 말했다. “내 딸이 얘들 또래야. 딸내미들 생각하면 쪽팔리고 무섭지. 근데 요즘 워낙 하루 벌이가 힘들어서….”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동영상=박유천 사생팬에게 따귀맞는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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