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17일 새벽,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탄 초등학교 교사 N 씨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3명이 보호자 없이 우르르 기내 좌석에 앉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들의 대화를 들으니 서울 목동의 특목고 학원에 가는 길이었다.
대형 사교육업체 임원인 L 씨는 지난주 월요일 새벽 경부선 KTX를 타고 출장을 가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선잠을 깼다. 고교생으로 보이는 그들은 고난도 수학시험지를 풀고 있었다. 알고 보니 주말에 서울의 학원에서 합숙을 한 뒤 대구의 학교로 등교하는 상황이었다.
L 씨는 “주5일 수업제 시행 이후 중소 학원들이 주말반에 지방 학생들을 끌어모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일요일 밤까지 붙잡아 놓는 건 심하지 않으냐”고 고개를 저었다.
주5일 수업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지방에서 서울로 원정 주말 사교육을 떠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놀토’가 격주로 있어서 고정적인 사교육이 여의치 않았던 지난해와는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원정 사교육을 불사하는 학생들은 주로 특수목적고 입시를 노리는 중학생이나 주요 대학의 대학별 고사를 준비하는 고교생. 한마디로 지방의 사교육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는 최상위권 학생들이다. 이들은 KTX나 비행기를 타고 토요일 아침 일찍 서울로 향해 학원가 근처 레지던스나 오피스텔에 묵으며 특강을 듣는다.
서울에서 주말 한 번을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은 알선업체나 관리학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알음알음으로 비밀리에 운영하는 알선업체들은 왕복 교통편과 숙박, 원하는 수준의 그룹과외 등을 패키지로 묶어 한 달 단위로 돈을 받는다. 일부에서는 수백만 원까지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에서 전국 200등 안팎의 성적을 받는 고2 아들을 둔 학부모 박모 씨(46·광주)는 “지방은 고급 수학이나 논술 강사를 찾기 힘들고 정보도 늦어 지난 겨울방학에 서울의 영수 학원에 보내봤다”면서 “당시 다니던 학원에서 월 140만 원에 매주 주말 관리를 해준다고 해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지방의 수요가 늘어나자 아예 서울의 강사가 지방으로 출장 가는 경우도 등장했다. 서울 송파구 일대에서 과외 경력 10년 이상의 명문대 출신 개인교사들을 소개해 온 K 씨는 개학 이후 지방에서 삼삼오오 팀을 이뤄 주말 과외를 문의하는 학부모들이 생겼다고 전했다. K 씨는 “원정 강의는 정해진 시세가 없어 강사의 인지도와 이동거리에 따라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