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동 ‘살인의 추억’ DNA로 검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2일 03시 00분


“비오는 날이면 범행 충동 끓어 올라…”
2년전 성폭행-방화 미제사건 최근 범행서 타액 남겨 덜미… 범인은 은행 청원경찰 30대

2년 전 미궁에 빠졌던 서울 강북구 수유동 성폭행 및 방화 살인 사건의 범인이 최근 다른 성폭행사건을 저질러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범인은 한 은행의 청원경찰이었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11일 오전 7시 반경 성북구 동선동의 한 원룸에 침입해 자고 있던 여대생 K 씨(23)를 성폭행한 뒤 금품을 훔친 혐의로 강모 씨(37)를 20일 긴급체포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은 K 씨의 몸에 묻어 있던 용의자의 타액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냈고 분석 결과 2010년 7월 강북구 수유동에서 발생한 성폭행 방화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폐쇄회로(CC)TV 화면과 교통카드 사용명세를 추적한 경찰은 잠복근무 끝에 20일 오후 7시경 강 씨를 검거했다.

경찰에 붙잡힌 강 씨는 2년 전의 범행 사실을 모두 시인했다. 그는 2010년 7월 수유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들어가 L 씨(당시 24세·여)의 손을 케이블타이로 묶고 성폭행한 뒤 자신의 얼굴을 봤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살해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집에 불을 질렀다. 관할서인 강북경찰서는 당시 범인이 남긴 정액 속 DNA를 바탕으로 L 씨의 지인과 동종전과자 900여 명을 조사했지만 일치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강 씨는 고등학생이던 1992년 퍽치기 범행으로 입건된 적이 있지만 당시 혈액형을 허위로 기재한 덕에 DNA 조사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재개발 지역에서 용역 일을 하다 올해 3월부터 경기 용인의 한 은행에서 청원경찰로 근무해 온 강 씨는 경찰 조사 내내 당당한 태도였다고 한다. 그는 “2010년부터 마땅한 직업이 없어 4000만 원 상당의 카드 빚에 시달리면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유독 비 오는 날 범행 충동이 끓어올랐다”며 “2010년 첫 범죄를 저지르던 날도 비가 왔다”고 했다. 강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수유동 사건과 달리 이번에는 피해자가 내 얼굴을 못 봤고 신고할 것 같지 않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강 씨를 “평범한 옷차림에 준수한 외모”라고 설명하며 “전형적 사이코패스의 성향을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강 씨의 집에서 13개의 칼과 피해자들로부터 훔친 것으로 보이는 손목시계 78개를 발견하고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강 씨는 시계들에 대해 “재개발 지역에서 주운 것으로 범죄와는 관계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강 씨에 대해 성폭행과 살인 사체손괴 방화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사건범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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