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변(便)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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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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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 변비… 인스턴트 식품 때문?“화장실 가고 싶을 때 못가서…”


전북에 사는 여고생 K 양(16)은 벌써 한 달째 변비로 고생 중이다. K 양의 고통은 3월에 기숙형 고교에 진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시작됐다. 평소 집밖에서는 ‘일’을 잘 보지 못하던 K 양. 중학교 때까지는 등교하기 전이나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서 해결했다. 하지만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니 일주일에 토요일 하루만 집에 가는 게 가능했다.

K 양은 결국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집에서만 화장실을 갈 정도로 악성변비에 시달리게 됐다. 화장실을 못간 지 5일 정도가 되면 배 속이 뒤틀리듯이 아파서 공부에 집중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가끔 학교에서 기다리던 ‘대장의 신호’가 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 수업 시간이라 화장실에 가지 못한다.

K 양은 “요즘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가면 부모님의 첫인사가 ‘화장실은 갔니’가 됐다”면서 “같은 방을 쓰는 4명 중 3명이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변비로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 청소년 변비환자 급증… “10분 안에 해결 어려워요”

최근 중고교생 변비 환자가 빠르게 늘었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2년부터 2009년까지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대 변비환자의 증가율은 7.33%로 전체 연령대 증가율 중 가장 높았다. 전체 환자의 연평균 증가율은 5.75%다.

전문가들은 인스턴트 음식 섭취의 증가와 스트레스 및 운동 부족을 청소년 변비환자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중고교생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싸고 싶을 때 쌀 수 없는’ 고통이다.

고교생의 경우 등교해서 야간자율학습을 마칠 때까지 보통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계속 학교에 있는 상황. 주로 10분이 주어지는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야 한다. 하지만 수업종이 울리고 화장실에 가서, 줄을 서고, 볼일을 본 뒤, 다시 교실까지 돌아오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시간이 촉박하다.

서울지역의 여중에 다니는 2학년 I 양(14)은 “2학년 9개 반의 300명 정도의 학생들이 단 하나의 화장실을 사용한다”면서 “화장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데 우리 반은 거리가 멀어 쉬는 시간에 다녀오기 힘들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에 ‘신호’가 와서 화장실에 가는 것은 쉽지 않다. “쉬는 시간에 안 가고 뭐했느냐”며 보내주지 않는 교사가 적잖기 때문. 화장실에 보내주고 싶어도 ‘한 학생이 화장실을 가면 다른 학생도 연이어 화장실을 가는 경우가 많아 수업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수업시간에는 화장을 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울산에 사는 고3 S 양(18)은 “야간 자율학습시간에도 면학 분위기를 위해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서 화장실을 갈 수 없다”면서 “자율학습시간에 화장실에 가면 벌점을 받는다”고 말했다.

○ 친구들의 장난… 변비의 또 다른 적

운 좋게 쉬는 시간 맞춰 아랫배에 ‘신호’가 와도 주변 시선이 신경 쓰여 대변을 보는 데 실패하는 학생도 적잖다. 특히 일부 남학생은 친구가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걸 알면 문을 두드리거나 문 앞에 서서 이름을 부르는 등 장난을 치기 때문에 긴장돼서 ‘성공’ 직전에 그만 ‘실패’하고 만다는 것.

울산에 사는 고3 L 군(18)은 “화장실을 다녀오면 친구들이 ‘똥쟁이’라고 놀리거나 ‘냄새가 난다’라며 장난을 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친구들 몰래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배가 아파도 참거나 외출증을 끊어서 학교 근처 음식점 화장실에 다녀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열악한 화장실 환경도 변비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아직도 많은 학교의 화장실은 걸터앉아서 볼일을 보는 양변기가 아닌 쭈그려 앉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사람이 없고 시설까지 좋은 교직원 화장실은 학생들 사이에서 ‘꿈의 화장실’로 통한다. 하지만 교직원 화장실은 학생이 이용하면 벌점을 주는 학교가 많아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강원도에 사는 중3 L 군(15)은 “학생 화장실 문이 고장 나도 바로 수리되지 않을 때가 많다”면서 “편하게 볼일을 볼 수 있도록 화장실이 바뀌어야 학교에서도 편하게 일보는 학생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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