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광영]경찰청 압수수색 때 ‘꼼수 영장’ 내민 디도스 특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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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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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신광영 사회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특별검사팀은 4일 경찰청을 압수수색하기에 앞서 특이한 영장을 제시했다. 법원 영장의 가운데 부분이 대형 메모지로 가려 있었던 것이다. 영장에는 통상 압수수색할 장소와 대상이 위아래로 명시되는데 가려진 부분은 장소와 대상 사이였다. 영장에 명시된 압수수색 장소는 광주 통합전산센터와 경찰청 건물 내부 등 2곳뿐이었다. 영장에는 압수수색 장소를 구체적으로 특정하도록 돼 있어 ‘경찰청 건물 내부’ 같은 두루뭉술한 표현은 통용되지 않는다. 특검팀은 경찰청 내 압수수색 장소로 영장에 적시한 곳의 일부를 감추려 한 것으로 보인다.

수사기관이 내용을 일부 가린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법원은 수사기관이 청구한 영장을 보고 압수수색 장소 중 일부를 기각할 경우 그 부분에 줄을 긋고 도장을 찍는다. 수사기관 입장에선 압수수색하려 한 곳이 노출되면 피의자 측이 증거인멸을 시도할 수 있어 법원에서 기각한 부분을 가리는 것이다.

소동은 특검팀이 이 영장을 가지고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사이버센터)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려고 하면서 벌어졌다. 이번 특검이 검경의 디도스 수사가 배후 의혹 등을 풀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만큼 경찰 수사의 ‘베이스캠프’인 사이버센터 사무실은 압수수색이 꼭 필요한 곳 중 하나다. 특검은 영장에 나온 ‘경찰청 건물 내부’라는 표현을 근거로 압수수색을 하려 했다. 그러자 경찰은 “사이버센터가 압수수색 장소로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응할 수 없다”고 맞섰다. 양측은 2시간가량 실랑이를 벌이다 특검이 경찰 측 의견을 수용하는 걸로 사태를 마무리했다.

특검 측은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이버센터는 압수수색 영장에 없었다”고 밝혔다. 해당 사무실을 압수수색할 법적 근거가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전날 2시간에 걸쳐 압수수색을 시도했던 셈이다. 특검 측은 사이버센터에 대한 압수수색 요청을 법원이 기각했느냐는 질문에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영장에도 없는 곳을 압수수색하려 할 만큼 특검이 사이버센터를 중요한 곳으로 여겼던 점을 감안하면 특검 측은 그곳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시켰다가 기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특검이 사이버센터를 압수수색했다면 이는 명백히 불법이다. 법원이 기각했든, 아니면 애초에 특검이 청구하지 않았든 그곳은 영장에 명시된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법으로 확보한 자료는 증거 효력도 없다. 이번 특검은 검경의 디도스 수사에 대한 국민적 불신에서 시작됐다. 어느 수사기관보다 원칙을 지켜야 할 특검이 이런 꼼수를 부린다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놔도 신뢰받기 어렵다.

신광영 사회부 neo@donga.com
#경찰#검찰#디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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