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범행현장 앞에서 A 씨의 가족은 오열했다. 112 신고까지 했는데 찾지 못한 경찰을 원망했고 시끄러운 소리를 듣지 못한 주민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남동생 B 씨(25)는 누구보다 충격이 컸지만 식음을 전폐하는 부모 걱정이 더 컸다. B 씨는 “누나를 보내고 아버지가 마신 소주가 30병은 넘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인문계 대신 실업계 고교 진학을 권한 아버지의 뜻에 군소리 없이 따랐고 결혼한 언니 집에 얹혀살면서도 택시비 3000원을 아끼려 밤에도 버스로 퇴근하던 착한 딸이자 누나였다. 이렇게 아낀 돈은 부모 생활비와 어린 조카 용돈으로 아낌없이 쓰였다. 지난해 8월 고향인 군산에서 수원 언니 집으로 올라와 오산 직장에 다닐 때는 오전 5시에 일어나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그는 1월 집 근처 전자 부품회사에 취직했다.
가족은 사건 당일 수색과 이후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경찰의 태도에 가슴을 치고 있다. B 씨는 “넋이 나간 큰누나가 순찰차에 함께 타고 있었는데 앞에 앉은 경찰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며 “심지어 자기들끼리 ‘뭐 먹을까’라며 농담처럼 얘기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가족은 실종된 A 씨를 찾기 위해 경찰 대신 뛰어다녔다. A 씨의 아버지와 형부는 2일 오전 A 씨의 회사에서 폐쇄회로(CC)TV까지 확인하고 A 씨가 전날 오후 10시에 퇴근한 사실을 경찰에 알려줬다.
A 씨의 시신이 발견된 뒤 일부 경찰은 울고 있는 가족 앞에서 범행 현장의 참혹한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는가 하면 범인 검거 사실을 거론하며 “한 건 했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빈소에는 장례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명의 경찰도 찾아오지 않았다. 서천호 경기지방경찰청장은 8일 오전에야 전북 군산시의 A 씨 집을 찾아 부모에게 사과했다.
한편 범인 우위안춘(吳元春·42·중국인 조선족) 씨는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후허하오터(呼和浩特) 시에 살다 2007년 9월 처음 취업비자로 국내에 들어와 거제도, 제주도, 경기 용인시, 대전 등지를 떠돌다 지난해 2월 수원에 정착했다. 막노동을 하며 생활했고 월 200여만 원을 벌어 중국에 있는 부인(40)과 아들(11)에게 송금해 왔다. 우 씨는 현재까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강력미제사건 유전자(DNA) 감식 결과 일치하는 범죄는 없었다. 경찰은 우 씨의 중국 내 범죄경력을 조회하기 위해 인터폴에 공조를 요청했다. 프로파일러의 범죄심리 상담 결과 우 씨는 소학교만 나와 지능 수준이 떨어지고 내향적인 성격으로 일반적인 사이코패스와는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수원=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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