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게임중독 극복한 서울대 박태균 씨 “게임 속 캐릭터 아닌 나를 ‘레벨 업’ 시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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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0일 03시 00분


의지만으로는 부족해 쇠사슬로 의자에 몸 묶기도… PC서 멀어지니 게임생각도 줄어
공부, 게임처럼 레벨 만들어 기록 눈으로 확인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PC방에 가요. ‘한 시간만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 생각하고 PC 앞에 앉지만 게임에 집중하다 보면 서너 시간은 훌쩍 지나가죠. 결국 공부는 포기하고 밤늦게까지 게임만 하다 집에 돌아가요.”(중3 A 군)》

게임중독을 극복하고 서울대 공과대학 화학생물공학부에 합격한 박태균 씨(26)는 “게임중독을 혼자 이겨내기 힘들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게임중독을 극복하고 서울대 공과대학 화학생물공학부에 합격한 박태균 씨(26)는 “게임중독을 혼자 이겨내기 힘들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게임중독에 빠진 중고교생은 수업시간에 필기 대신 교과서 귀퉁이에 게임지도를 그리며 전략을 세운다. 야간자율학습이나 학원수업을 빼먹고 친구들과 PC방으로 향하는 일도 허다하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책상 앞에 앉아도 머릿속에는 온통 게임생각뿐이다.

게임중독,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서울대 공과대 화학생물공학부 05학번 박태균 씨(26)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그는 고 1때 게임중독에 빠졌지만 이를 극복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에 합격했다. 현재는 같은 대학·학과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신의 고교 시절 공부 노하우를 담은 학습서 ‘태그멘토’(두산동아)를 출간했다. 박 씨가 지독한 게임중독에서 벗어났던 ‘탈출 스토리’를 들어보자.

[Before] 게임에 빠지다

박 씨가 게임에 빠진 건 고1 겨울방학 때. 우연히 동생이 ‘오리콘 마스터 R’라는 온라인게임을 하는 모습을 본 것이 화근이었다.

매일같이 하루 10시간이 넘게 PC 앞에 앉아 게임을 했다. 부모님이 주말에 멀리 여행이라도 가신 날은 하루 종일 게임에만 빠져 살았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 수업 시간, 쉬는 시간 구분 없이 노트에 ‘맵’(게임지도)을 그려놓고 ‘어느 지역에 보석아이템이 자주 등장하는지’ ‘어떤 캐릭터가 보석을 먹는 데 유리한지’를 생각하고 분석했다. 공부에도 자신이 있었다. 박 씨는 중학교 때부터 전교 3등 아래로 떨어져본 적이 없는 최상위권 학생이었다. 그는 ‘나는 공부와 게임을 적절히 병행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결국 성적은 떨어졌다. 고2 1학기 중간고사 때 전교 10등 밖으로 밀려났다. 특히 자신 있던 수학은 난생처음 80점대를 받았다. ‘아…. 나도 게임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박 씨는 게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Step1] 쇠사슬로 묶다

게임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결심과 의지만으로는 부족했다. 책상 앞에 앉아 문제집을 펼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PC로 향했다. 동생에게 ‘내가 접속할 수 없도록 게임사이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바꾸라’고 말했다. 소용없었다. 주민등록번호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다시 동생에게 ‘PC를 켤 수 없도록 비밀번호를 걸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게임중독에 빠진 박 씨는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게임을 계속했다.

박 씨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철물점에서 쇠사슬과 자물쇠를 사왔다. 쇠사슬로 자신을 의자에 묶어 단단히 고정시킨 뒤 자물쇠를 잠갔다. 자물쇠 열쇠는 동생에게 맡겼다. ‘내가 아무리 고집을 부리고 화를 내도 한두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절대 이 자물쇠를 열어주지 말라’고 부탁했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참고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 비인간적이고 무식한 방법이 아닐까. 다음은 박 씨의 설명.

“게임중독은 의지만으로는 절대 극복할 수 없어요. 혼자 이겨내기 힘들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결국 의자에 스스로를 묶음으로써 책상 앞에 한두 시간씩 앉는 습관을 되찾았어요.”

[Step2] 게임하듯 공부하다

책상 앞에 억지로 앉기는 했지만 여전히 박 씨의 머릿속에는 게임생각뿐이었다. 그는 억지로 공부하지 않았다. 공부 자체가 싫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음악을 듣거나 엎드려 잠을 잤다.

PC에서 멀어지니 자연스레 게임생각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예전만큼 공부가 즐겁지는 않았다. ‘게임처럼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박 씨는 게임처럼 공부에도 ‘레벨’을 만들어두는 방법을 고안했다. 공부한 시간을 매번 기록해 스스로 어떤 과목을 얼마나 공부했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

처음에는 뿌듯한 마음이었다. 기록한 내용을 보며 ‘오늘은 언어공부를 두 시간이나 했네!’ ‘수학문제를 20개나 풀었잖아!’와 같이 생각했다. 그러자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엇, 수학은 많이 했는데 외국어는 소홀했구나’ ‘수학에서 ○단원은 열심히 한 반면에 다른 단원은 문제를 거의 풀지 않았네’ 등을 알 수 있었다. 고2 2학기부터 그는 예전의 최상위권 성적을 회복했고 결국 목표하던 서울대에 합격했다.

“어느 날 큰 맘 먹고 게임 캐릭터를 삭제했는데 아무것도 남는 게 없더라고요. 캐릭터에 투자한 시간과 돈은 어마어마한데 말이에요. 하지만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건 게임과 달라요. 많은 시간을 투자할수록 많은 지식이 오랫동안 남아있죠.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닌 나에게 지금 이 순간을 투자하세요. 스스로 ‘레벨 업’되는 게 느껴질 거예요.”(박 씨)

글·사진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게임중독#게임중독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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