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20대 여성 살해 범인 “어깨 부딪치자 욕해… 우발적 범행”이라더니…
CCTV 통해 계획적 범행 드러나
1일 오후 10시 반경 경기 수원시 팔달구 지동. 퇴근한 A 씨(28·여)는 버스에서 내려 지동초등학교 옆길을 걸으며 집으로 향했다. 학교 후문을 50여 m 지났을 무렵 갑자기 전봇대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A 씨는 길에 쓰러졌다. 검은 그림자는 우악스러운 손길로 A 씨의 목을 감싸 안고 바로 앞 주택 안으로 끌고 갔다. A 씨는 안간힘을 다해 반항했지만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로부터 13시간이 지난 뒤 A 씨는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A 씨를 살해한 ‘검은 그림자’ 오원춘(吳元春·42) 씨는 검거 직후부터 줄곧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다. 자칫 진실이 될 뻔한 오 씨의 주장은 뒤늦게 폐쇄회로(CC)TV에 찍힌 화면이 발견되면서 가증스러운 거짓말로 확인됐다. 경찰은 중요한 증거물인 CCTV 자료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 만약 CCTV 자료를 조금만 더 빨리 확인했다면 A 씨는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다.
유족은 “경찰이 딸을 두 번 죽였다”며 분노하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오 씨가 뻔뻔한 거짓말을 이어가자 유족들은 “착하고 내성적인 아이라 다른 사람과 몸을 부딪쳤다고 시비를 벌일 애가 아닌데 경찰이 딸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유족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었음이 확인됐다.
A 씨 아버지(60)는 “딸은 남하고 몸이 스치기라도 하면 ‘죄송합니다’ 그러고 피할 아이”라며 “(경찰에게) 그렇게 얘기했는데…. 내가 뭐랬나, 그놈들 제대로 확인도 안한 것이다”라고 격분했다. 그는 “그놈(범인)이 자기 유리하게 하려고, 우리 딸이 먼저 잘못했다고 하려고 그런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 씨가 납치당하는 장면은 경찰이 이미 분석을 마친 CCTV 자료에 들어있었다. 분석을 담당한 경찰은 ‘피해자가 청바지를 입었다’는 내용을 듣고 화면에 포착된 사람들의 옷차림에만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런 사이 정작 중요한 납치장면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흑백 화면에 희미하게 포착된 모습이지만 ‘납치’라는 상황에 초점을 맞춰 분석했다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자료였다. 특히 ‘지동초등학교’를 언급한 112 신고 내용에 초점을 맞춰 CCTV 확보와 분석을 서둘렀다면 경찰 탐문과정에서 A 씨를 찾았을 가능성이 높다.
○ ‘무능·무성의·무책임’ 경찰
CCTV의 존재와 분석과정의 실수는 경찰청 감찰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났다. 자칫 사건과 함께 영원히 묻혀질 뻔한 진실이 뒤늦게 드러난 셈이다. 경찰은 고의적인 은폐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찰 스스로의 무능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결국 이번 사건은 112 신고부터 수사까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경찰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 처리 과정이 부실했음이 확인됐다.
게다가 범죄 피해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실종된 사건이었다. 경찰은 탐문수사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밤이 늦어 집집마다 방문할 수 없다”며 핑계를 댔다. 심지어 “허위 신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을 하고 함께 있던 가족 앞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A 씨 가족은 “더는 경찰을 믿을 수 없다”며 감찰 과정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는 것도 추진 중이다. 남동생 B 씨(25)는 “국가에 배신을 당한 기분”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