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해발 479m의 남한산에 세워졌다.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때 처음 돌 쌓기가 시작됐다. 완전한 산성의 모습을 갖춘 것은 1624년 조선 인조 2년 때다. 남한산성은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다. 병자호란(1636∼1637년) 때 인조가 한양을 떠나 47일간 머문 곳이다. 치욕적인 항복으로 끝났지만 한 달 넘게 청나라 군대를 막아냈던 군사 요새다.
주말에 2만 명 안팎의 등산객이 몰리는 인기 산행코스이자 유원지로만 인식되던 이곳의 숨은 역사가 일반에 개방된다. 바로 남한산성 행궁이다. 10년이 넘는 복원공사 끝에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조선의 왕들이 걸었을 길이 500m의 행궁 돌담길도 탄생했다. 자연의 멋을 발끝으로 느끼고 역사의 아픔을 가슴으로 배우는 새로운 명품 길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 한 서린 역사의 길
2일 오전 막바지 복원공사가 한창인 행궁을 찾았다. 5년 넘게 복원사업을 맡고 있는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의 노현균 문화유산팀장(건축학 박사, 문화재수리 기술자)이 안내를 맡았다. 행궁은 상궐과 하궐 좌전으로 구분돼 있다. 상궐은 임금의 처소, 하궐은 대신들과 함께 정사(政事)를 보던 곳이다. 좌전은 종묘(宗廟)를 모신 곳이다. 인조를 비롯해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이 여주 이천 등지에 있는 선왕의 능을 찾을 때 이곳에 들렀다.
내행전(임금의 침소) 뒤편으로는 왕이 산책하던 후원이 있다. 후원에는 40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느티나무가 서 있다. 행궁 주변으로는 돌담이 둘러싸고 있다. 돌담을 따라 길을 걷다 보면 궁궐의 모습이 마치 ‘비밀 공간’처럼 보인다. 높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덕수궁과는 다른 멋을 느낄 수 있다. 돌담길을 걷다 보면 옥천정(玉泉亭) 터로 이어진다. 옥천정은 왕이 휴식을 취하던 정자였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행궁 및 산성마을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노 팀장은 “비록 행궁에서 항전하다 끝내 항복했지만 그만큼 군사적 중요성이 입증된 셈”이라며 “신무기 훈련장소로 이곳을 선택할 만큼 조선 왕들이 애착을 가졌던 곳이다”라고 말했다. 2000년 시작한 행궁 복원 1단계 사업은 현재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다음 달 24일 일반에 전면 개방된다. ○ 아기자기한 산성마을길
행궁 주변에 형성된 마을에는 5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부분의 주민은 식당을 운영한다. 먹거리를 파는 곳이지만 대부분 한옥 형태의 건물들이다. 굳이 밥을 사먹지 않아도 식당을 구경하며 골목마다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반월정은 산성마을에서 유일하게 초기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1806년에 세워진 곳이다.
곳곳에 자리한 문화재를 둘러보며 마을을 도는 것도 좋다. 군사들의 훈련장이었던 연무관, 백제 시조 온조왕의 궁궐 가운데 일부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침괘정’(정확한 표기는 침과정) 등이 있다. 만해기념관 천주교순교성지 남한산성교회 등 종교 관련 시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남한산초등학교가 있다. 1912년 개교한 100년 역사의 학교다. 단층 건물의 아담한 모습에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노 팀장은 “지금은 마을 규모가 작지만 한때 3000명이 넘게 살 정도로 컸다”며 “행궁을 중심으로 자체적인 생활권을 형성한 이른바 ‘산성도시’의 개념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시내버스(9, 52번)를 타면 행궁과 산성마을까지 15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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