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바다’ 전직(轉職)지원센터 통해 본 서러운 재취업 시장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7일 03시 00분


“나 한강 가요” 그 상담실엔 항상 티슈가…

1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노사발전재단 서울전직지원센터에서 임은경 컨설턴트(왼쪽)가 구직자와 면담하고 있다. 눈물을 흘리는 구직자를 위해 책상에 화장지를 갖다 놨다. 노사발전재단 전직지원센터 제공
1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노사발전재단 서울전직지원센터에서 임은경 컨설턴트(왼쪽)가 구직자와 면담하고 있다. 눈물을 흘리는 구직자를 위해 책상에 화장지를 갖다 놨다. 노사발전재단 전직지원센터 제공
“이력서를 100번 이상 넣었는데 취업이 안 된다는 거예요. 부모 부양해야 하고, 자녀들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50대 초반 ‘고객’(구직자)이 감정이 북받쳐 울음을 터뜨리시더라고요.”

10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전직(轉職)지원센터에서 만난 컨설턴트 4명은 “상담 중 눈물을 흘리는 고객이 많다”고 전했다. 그래서 상담실에는 티슈가 한 상자씩 꼭 놓여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원하고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노사발전재단 전직지원센터는 구직자들을 섬긴다는 의미로 ‘고객’이라고 부른다.

○ 쉽지 않은 베이비부머 재취업

전직지원센터는 서울센터를 포함해 전국 14곳에 있다. 총 70여 명의 컨설턴트가 실직자나 퇴직예정자의 경력목표 설정, 일자리 검색과 이력서 작성, 면접 코치 등 재취업을 돕고 있다. 직업 경력이 1년 이상인 퇴직자는 누구나 무료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날 만난 컨설턴트들이 힘들었다고 한 대부분의 사례는 50대 화이트칼라 출신 남성 고객들이다. 박혜연 컨설턴트(32·여)는 “사회적 지위가 무너지고, 가장(家長)으로도 인정을 못 받는 듯한 기분에 상처 입은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채널A 영상] “아직 일할 수 있는데…” 나이 들 수록 ‘건강’이 취업 열쇠

컨설턴트들은 특히 50대 남성에게는 단순 용역업무 외에 일자리가 많지 않은데 당사자들은 구직 요령이나 재취업 시장 상황을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자신들이 젊었을 때에는 취직이 쉬웠고, 대부분 한 회사를 오래 다닌 터라 구직난을 처음 겪어보기 때문이다. 알 만한 대기업에서 억대 연봉을 받았던 전직 임원이 “재취업을 하려면 뒷돈이 필요하다”고 헤드헌터를 사칭해 접근한 사기꾼에게 돈을 뜯긴 일도 있었다. 마음은 간절한데 재취업 시장은 모르니 벌어진 일이다.

정선형 컨설턴트(38·여)는 “이력서에 달랑 ‘○○○ 회사에서 부장급으로 근무’라고 한 줄 써오는 분도 많다”고 말했다. 상담 중 정부와 사회를 비판하며 핏대를 세우거나, 전에 근무하던 회사의 상사를 욕하는 고객도 흔하다. 전직지원센터 김대중 교육상담팀장은 “실직한 뒤 외출을 끊고 가족과의 관계도 서먹해져 대화 상대가 없었던 남성들이 여성 컨설턴트들이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을 ‘잘못된 신호’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전했다.

○ “연락 끊긴 고객이 가장 걱정돼”

임수정 컨설턴트(37·여)는 몇 년 전 부인과 딸을 캐나다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던 50대 남성 고객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실직해 가족에게 생활비를 부칠 수 없게 됐고, 부인이 바람을 피우자 자살을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경력도 괜찮고 의지도 강해 보이던 분이었는데 감정 기복이 심해지더니 센터에 안 오시더라고요. 전화해 상담을 받으라고 설득했는데 ‘술을 마시고 있다, 한강에 가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다행히 그 고객은 이후 마음을 고쳐먹고 이혼 뒤 새 일자리를 구했다고 한다.

그나마 이렇게 연락이 닿은 경우는 낫다. 임은경 컨설턴트(36·여)는 “전화도 차비도 없다”며 한 번 상담을 받고 소식이 끊긴 20대 여성이 아직도 걱정된다고 했다. 우울증 증세를 보이던 고객에게 ‘교통비를 드릴 테니 센터로 오라’고 e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다.

전직지원센터에서는 ‘요즘은 어느 업종이 어렵다’는 것을 수치가 아닌 피부로 알게 된다. 지난해부터는 40, 50대 고학력 주부 구직자가 부쩍 늘었다. 남편이 퇴직하고 수입이 끊기자 결혼 후 오래도록 일을 하지 않았던 중년 여성들이 취업 전선에 나섰다는 얘기다.

종일 어두운 사연만 듣다 보니 컨설턴트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크다. 열정적으로 일하다 본인이 우울증에 걸려 그만둔 사례도 있다. 지난해 센터가 서비스한 고객은 모두 1만6436명으로, 컨설턴트 한 사람이 평균 250여 명을 맡았다. 그러나 컨설턴트들은 “재취업에 성공한 분들이 ‘고맙다’며 연락해 오면 피로가 씻은 듯 풀린다”며 활짝 웃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재취업#전직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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