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47)은 그날도 큰딸(28)을 때리고 있었다. 중학교 때 교통사고로 뇌병변 장애를 앓던 딸이었다. 술에 취한 남편은 급기야 ‘딸을 죽여버리겠다’며 흉기를 찾기 시작했다. 말려도 소용없었다. 부인 이모 씨(47)는 방에서 숨죽이고 있던 둘째 딸(27)과 아들(15)에게 구원 요청을 했다. 함께 남편의 팔다리를 붙잡은 뒤 청테이프로 손발을 묶고 입을 막았다. 그러곤 이불을 뒤집어씌웠다.
5시간쯤 지난 12일 새벽. 이불을 걷어냈을 때 남편은 숨을 쉬지 않았다. 인공호흡도 허사였다. 이 씨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119 구급대원은 남편을 병원으로 옮긴 뒤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 앞에서 이 씨는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숨을 안 쉰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의 추궁에 결국 자백했다. 이 씨는 “막내는 모르는 일”이라며 중학생 아들만은 보호하려 했으나 부질없었다.
경기 성남중원경찰서는 가족에게 폭행을 일삼던 남편을 질식시켜 숨지게 한 혐의(폭행치사)로 이 씨를 구속했다고 17일 밝혔다. 둘째 딸과 막내아들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 씨와 자녀들이 가장을 죽인 것에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일부러 살해하려 한 건 아닌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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