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학에 ‘레지덴셜 칼리지(Residential College)’ 바람이 불고 있다. 학생이 교수와 함께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공부는 물론이고 문화 예술 체육 봉사 등 전인교육을 받는 방식이다. 미국의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 명문대는 오래전에 도입했다.
연세대의 모든 신입생은 2014년부터 인천 연수구의 국제캠퍼스에서 한 학기를 보내게 된다. 이에 앞서 내년에는 일시적으로 한 학기씩만 지낼 예정. 지금은 6개 학부만 1년 또는 4년을 지낸다. 서울대도 이달 초 “새 기숙사를 세워 이르면 2014년부터 신입생을 레지덴셜 칼리지에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덕성여대도 2014년을 목표로 기숙사를 늘리는 중이다. 포스텍은 2008년부터 1, 2학년생에게 적용했다.
○ 인성 갖춘 인재 육성이 목표
연세대 테크노아트학부 박예지 씨(19·여)는 오전 9시경 일어나 수업을 들으러 간다. 국제캠퍼스의 기숙사에 있으니까 이동시간이 길지 않다. 수업은 대개 오후 3∼5시에 끝난다. 박 씨의 진짜 활동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친구들과 함께 전공수업의 그룹 프로젝트를 도서관이나 기숙사 라운지에서 한다. 2주 전에는 다른 학생들 및 조교와 함께 벽화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모두 ‘레지덴셜 칼리지 프로그램’의 일환.
대학들은 레지덴셜 칼리지의 장점으로 전인교육을 꼽는다. 연세대 서홍원 교수는 “1학년은 생애전환기에 속해 매우 중요하지만 대부분 술을 마시며 논다. 1학기 학사경고자의 50%가 1학년이라는 통계도 있다. 기숙사에서 다양한 전인교육 프로그램을 접하고 인생의 목표를 세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세대 국제캠퍼스 학생들은 △사회봉사 △합창 미술 등의 예술 활동 △운동 △영어몰입 프로그램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 포스텍은 △체육·봉사활동 △리더십 강좌 △저명인사 초청강연을 만들었다. 덕성여대 관계자도 “학업뿐 아니라 인성과 창의력을 개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기숙사마다 일부 교수와 조교가 상주하므로 언제든지 공부나 생활에 대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연세대 글로벌융합공학부 구본홍 씨(19)는 “일요일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선데이 브런치’나 기숙사의 같은 층 사람끼리 만나는 ‘플로어 미팅’을 통해 다른 과 학생과 친해질 기회가 많다”고 했다.
○ 시설 부족이 고민
레지덴셜 칼리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학생 사이의 유대감이 약해진다는 지적이 있다. 입학 직후 1학년만 기숙사에서 지내면 선배와의 만남이 어렵고 조언을 들을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동아리들은 신입회원을 받기 어려워 고민이다.
신입생의 기숙사 거주를 의무화하면 비용 문제가 생긴다. 연세대의 경우 기숙사 이용료는 1학기에 120만 원 정도(식비 제외). 한 학생은 “하숙에 비하면 비싸지 않지만, 집에서 통학이 가능한 학생도 모두 기숙사에 살아야 하니 불필요한 지출이 생기는 셈이다”고 했다.
기숙사와 학생회관 등 교내시설이 부족하고, 주변 환경이 삭막하다는 점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연세대는 기숙사를 단계적으로 늘리는 중이어서 내년에는 신입생을 절반씩(2000명) 나눠 한 학기씩 지내도록 했다. 덕성여대는 전체 신입생을 수용할 규모의 기숙사를 짓기 어려워 일단 190명 정도를 대상으로 운용할 예정이다.
반면 한국뉴욕주립대는 석사과정 50명, 박사과정 5명으로 지난달에 개교했지만 2000명이 이용할 수 있는 기숙사를 이미 완공했다. 시설을 완벽히 갖춘 뒤에 정원을 늘린다는 계획이어서 국내 대학과 대조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설립 취지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이다. 캠퍼스가 본교와 떨어져 있으면 교수가 이동하기 부담스럽고 학생 수가 적으면 개설과목이 줄어드는 등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레지덴셜 칼리지는 기숙사만 있다고 되지 않는다. 학원형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을 24시간 돌보겠다는 학교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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