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계기로 무선 단일망 구축 추진
2008년 감사원 ‘특혜 여지’ 지적에 중단→행안부 재추진
예산 확보 못해 2015년 완료 불투명… 업계 줄도산 우려
사망자 192명, 부상자 151명의 인명 피해를 낸 대구지하철 방화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올해로 9년이 지났다. 불붙은 차량 기관사가 마주 오던 열차 기관사에게 “진입하지 말라”고 연락할 수만 있었어도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재난 상황에서 연락할 비상무선 통신망이 갖춰지지 않아 대형 참사를 피하지 못했다.
2003년 당시 사고를 계기로 추진된 국가재난안전무선통신망(국가재난망) 구축 사업이 계속 표류하고 있다. 전문기관의 검증을 거치고도 특정 업체에 대한 독점 논란과 경제성 등을 이유로 전면 백지화와 재추진을 거듭하는 것. 추진 주체가 소방방재청에서 행정안전부로 바뀐 이후 사업에 속도를 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2015년까지 구축을 완료하겠다는 목표 실현은 아직 불투명해 보인다.
국가재난망 구축 사업은 소방 경찰 응급의료기관 행정기관 등 재난 관련 기관이 개별적으로 사용하던 무선통신망을 전국 단일망으로 만들어 평상시에는 기관별로 사용하다가 테러나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통합된 무선통신망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사업이다. 초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통합 교신 체계를 이용해 공조체계를 확실하게 갖추려고 추진된 것이다.
이 사업이 도입되면 해상에서는 불법 조업 단속 때 어업지도선과 해경 해군이 같은 통신망으로 소통할 수 있다. 기관별로 다른 통신망을 사용하고 있어 재난상황에 투입된 군 부대와 경찰 소방 등 관련 기관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도 해결된다.
그동안 정부는 이 사업에 2000억 원 이상 투자했다. 하지만 2008년 3월 감사원이 특혜 우려가 있고 투자비가 과다하다고 지적하자 2009년 사업이 전면 중단됐다. 당시 업계에서는 ‘한 가지 통신 기술만 적용하면 특혜 논란이 일 것을 우려한 공무원들이 손을 놓은 것’으로 해석했다. 이후 행안부는 재난안전통신선진화추진단을 만들었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해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한국정보화진흥원(NIA)에서 기술·통신방식의 검증만 도돌이표처럼 반복해왔다. 결국 행안부는 지난해 10월 기술 검증 결과를 토대로 와이브로나 테트라(TETRA·유럽표준) 방식을 구축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이번에는 주파수를 관할하는 방송통신위원회 및 통신사업자와 충돌했다. 행안부는 지난해 12월 상용망 사용을 검토하는 기술검증 용역을 발주해 13일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용역 결과 설명회에서 NIA는 국가재난망의 주 통신망으로는 상용망보다는 자가망 방식의 와이브로나 테트라로 추진하는 게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용역 결과 상용망 사용 비용이 최대 1조1000억 원으로 자가망 신규구축 비용(9000억∼1조200억 원)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라고 설명했다. 기존 상용망만으로 재난망을 구축하는 방법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정부 기본 방침은 최대한 의사결정을 빨리 내려 사업을 조기에 완료하자는 것”이라며 “정부 내외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이처럼 추진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아직 예산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 목표 시점인 2015년까지 국가재난망이 구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정부의 방침을 믿고 수년째 표준기술 개발에 집중해온 중소기업 61곳의 줄도산도 우려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