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가 지나자 A 양의 휴대전화로 어김없이 메시지가 들어왔다. 연인 사이에나 주고받을 법한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남자친구가 아니었다. 그와의 악연은 대학 입학을 앞둔 올 1월 원룸을 구하러 다니다가 시작됐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지만 보증금 200만 원이 부족했다. 이때 부동산중개업소 직원이라며 접근한 그는 부족한 돈을 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급한 마음에 하루에 5만 원씩 갚는 조건으로 200만 원을 빌렸다. A 양은 용돈을 아끼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해서 16차례에 걸쳐 80만 원을 갚았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되면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용돈이 떨어지면서 갚아야 할 돈이 밀리기 시작했다. 돈을 빌린 지 45일째 되던 날 A 양을 불러냈다. 그는 “오늘부로 원금이 300만 원으로 불어났다.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아도 된다”고 했다. A 양의 대학생활은 그가 보내는 문자와 빚 독촉 때문에 지옥으로 변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3년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B 씨는 이달 초 생활비 대출을 받기 위해 생활정보지에 있는 대출중개인 번호로 전화를 했다. 대출중개인은 대출 승인에 필요하다며 B 씨의 신분증과 현금카드, 비밀번호를 요구했다.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게 미심쩍었지만 “신용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내 돈으로 100만 원을 넣고 인출하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고 해 그런 줄로만 알았다. 중개인이 약속했던 대출 예정일이 지나도 돈이 들어오지 않아 전화를 했더니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며칠 뒤 통장을 확인해 보니 1600만 원이 들어왔다가 당일에 모두 빠져나갔다. 문제의 1600만 원은 캐피털 회사 한 곳과 저축은행 3곳으로부터 400만 원씩 대출돼 B 씨 통장으로 입금된 돈이었다. 대출중개인이 B 씨 돈을 인출해 종적을 감춘 것이다.
정부가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시작한 지 이틀째인 19일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는 1464건의 피해신고가 들어왔다. 첫날인 18일 1504건을 포함하면 이틀 동안 약 3000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동네 건달이나 조직폭력배를 다룬 영화에나 나올 법한 불법 추심사례가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었다. 기존 금감원 ‘서민금융종합지원센터’에는 평소 하루 120건 정도의 사금융 피해 사례가 접수됐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설치된 신고센터에는 신고 대표번호(국번 없이 1332)가 불이 날 정도로 신고전화가 폭주했다. 조성래 금감원 서민금융지원실장은 “보복이 두려워 숨죽이고 있던 피해자들이 신고전화가 많이 왔다는 보도를 보고 용기를 내서 전화를 한 것 같다”고 했다.
막상 전화기를 들었지만 피해자들은 주저하고 두려워한다. 김석 금감원 서민금융지원실 팀장은 “신고자들은 한결같이 ‘혹시 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하나. 빚 독촉에 시달리는 것도 무섭지만 이렇게 전화한 게 알려질까 봐 더 무섭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신고센터는 5월 31일까지 운영된다. 금감원은 신고자를 대상으로 유형별 상담을 실시한 뒤 자산관리공사나 신용회복위원회로도 연결해 맞춤형 상담이 이뤄지도록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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