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통]섬으로 도망친 살인범… “춥고 배고파” 사흘만에 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1일 03시 00분


끔찍한 범죄 용의자도 굶주림과 추위 앞에서는 별 수 없었다.

19일 오후 7시 반 전남 완도군 신지대교에서 근무 중인 경찰 앞으로 50대 남성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이 남성은 “내가 바로 당신들이 찾고 있는 살인 수배자”라고 밝혔다. 경찰은 체포보다도 금방 쓰러질 듯한 기색에 “괜찮으시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스스로 경찰을 찾은 살인 용의자 김모 씨(58)는 “너무 배가 고프고 춥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는 16일 오후 9시경 완도군 완도읍 한 아파트 앞길에서 내연녀 A 씨(58)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범행 직후 4km를 걸어 완도군 신지대교 인근에 도착했다. 김 씨는 17일 새벽 목선을 훔친 뒤 노를 저어 고향인 신지도로 들어갔다. 신지도는 완도읍 인근 섬이지만 2006년 신지대교(1100m)가 완공되면서 육지와 다름없게 변했다. 김 씨는 완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완도대교는 물론이고 신지대교에 자신을 붙잡으려는 경찰이 배치됐을 것이라고 판단해 목선으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17일 오전 신지도 해안가에서 이 목선을 발견했다. 곧바로 경찰 200명과 헬기가 투입돼 수색에 나섰다. 그는 야산에 숨어 탈출을 궁리했다. 하루 1∼2시간만 눈을 붙이고 계속 숨어 다녔으며 밤에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신지도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산에 있는 진달래 등을 닥치는 대로 따먹고 계곡물을 마셨지만 배고픔은 그를 괴롭혔다. 헬기가 저공비행하며 계속 수색하자 숨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이틀 동안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던 그는 19일 비까지 내리자 탈진상태에서 자수를 선택했다. 경찰은 20일 김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완도=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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