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음대서 이런 일이… 경찰, 이호교 교수 영장 신청
‘국내 유일의 전공교수’ 악용… 실기시험 칸막이 없어 부정 쉬워
김모 씨(56)의 아들(22)은 음대 피아노 전공 입학을 꿈꿨지만 경쟁률이 높은 피아노 전공에 합격할 자신이 없어 고2 때부터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은 콘트라베이스로 전공을 바꿨다. 그러나 2009년 말 유명 대학 음대 실기시험에서 서툰 연주로 불합격했다.
아들을 국내 최고의 음대 중 하나인 국립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음악원에 보내려던 김 씨는 아들이 재수를 시작한 2010년 초 솔깃한 소식을 들었다. 국내 유일의 콘트라베이스 전공 정교수인 한예종 이호교 교수(45)에게 배운 제자들이 모두 한예종에 합격했다는 소문이었다. 김 씨가 교습을 부탁하자 이 교수는 국립대 교수가 개인 교습을 하는 것은 불법인데도 받아들였다. 아들은 교수실과 불법 교습소에서 시간당 15만 원씩을 주고 40여 회에 걸쳐 교습을 받았다. 2010년 6월에는 이 교수가 “내 악기를 쓰라”며 콘트라베이스를 빌려줬다. 김 씨 아들은 같은 해 10월 한예종 실기시험에 응시해 최종 합격했다.
이때부터 이 교수는 본심을 드러냈다. 그는 빌려준 악기를 1억8000만 원에 사라고 강요했다. 이 교수는 “이탈리아의 명장인 발단토니가 1863년 제작한 것으로 5억 원이 넘는 악기”라고 했다. 또 “실력이 부족한 아들이 합격한 건 내가 최고점을 준 덕분이다. 입학을 도운 다른 교수들한테도 줘야 하니 8000만 원을 달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실기시험에서 김 씨 아들에게 최고점인 92점을 줬다. 한예종 음악원은 부정 입학을 방지하기 위해 최저·최고점을 뺀 뒤 평균 점수를 낸다. 그러나 콘트라베이스 전공 교수가 준 점수를 참고해 바이올린 전공 교수 등 다른 교수들도 콘트라베이스 전공 수험생에게 점수를 주는 관행 때문에 이 교수가 김 씨 아들에게 최고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여론을 주도하면 최고점이 빠지더라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또 불합격자에게는 최저점을 줘 다른 교수들도 낮은 점수를 주도록 유도했다. 김 씨 부부는 2010년 11월 교수가 요구한 2억6000만 원을 모두 줬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이 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22일 밝혔다. 김 씨 부부도 뇌물 공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이 이 교수가 강매한 악기 라벨을 감식한 결과 국내산 접착제를 쓰는 등 ‘짝퉁’으로 드러났다. 발단토니가 만든 진짜 악기는 라벨에 발단토니의 ‘풀네임’인 ‘주세페 발단토니 안코나에(anconae)’라고 써 있는 것과 달리 ‘주세페 발단토니 안콘체(anconze)’라고 돼 있었다. 한 악기 판매상은 경찰에서 “이 교수가 2009년 완전히 고장 난 악기를 들고 와서는 ‘고쳐 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3명에게 불법 교습을 해 4000만 원을 챙겼다. 자신의 악기를 고가에 강매하거나 제자의 악기와 강제로 교환한 혐의도 받고 있다. A 씨가 가지고 있던 500만 원 상당의 현악기 활을 본 이 교수는 “활이 커서 네 악기와 맞지 않는다”며 자신의 활과 강제로 바꿨다. A 씨가 받은 활은 접착제로 붙인 부러진 활이었다. 다른 교수에게 1000만 원에 팔기로 한 콘트라베이스는 제자에게 2500만 원 정도에 강매했다. 제자에게 특정 악기사의 악기를 강매한 뒤 악기사에서 수수료로 10%를 받아 1350만 원을 챙기고, 최신형 휴대전화를 사오라고 해 70만 원 상당의 휴대전화를 가로채기도 했다.
경찰은 2002년부터 올해까지 김 씨 아들을 포함해 이 교수 제자 19명이 모두 한예종 콘트라베이스 전공에 합격한 것에도 비리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이 교수에게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한예종 음악원 실기시험은 다른 학교 음대 시험과 달리 수험생이 연주할 때 심사위원과 학생 사이에 가림막을 치지 않고 심사위원들끼리도 점수를 공유할 수 있도록 칸막이가 없어 부정 입학이 쉬운 구조”라고 말했다.
한예종 관계자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오는 대로 부정 입학 의혹 학생들에 대한 입학 취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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