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사례라던 성북 장수마을 市, 주거환경구역 지정 추진
“법적 근거-예산 확보 차원”… 주민들 “공동체 훼손 걱정”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발적인 주민 참여로 공동체를 복원하겠다며 추진 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이 결국 재개발 사업과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가 마을공동체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혀 온 성북구 장수마을을 주거환경관리사업 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거환경관리사업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서 규정한 주택재개발이나 재건축 같은 정비사업의 하나다.
시는 다음 주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장수마을 역사·문화 보존 정비 종합계획 수립용역’을 발주한다. 주거환경관리사업 구역으로 지정되면 지방자치단체가 도로와 같은 기반시설이나 공동이용시설의 개선을 맡는다. 철거 방식의 정비사업과 달리 대신 주택은 집주인이 스스로 새로 짓거나 고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는 오세훈 전 시장 시절 당시 뉴타운의 대안으로 추진하던 휴먼타운 방식과 같아 과연 마을공동체의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 장수마을, 마을공동체 모범 사례
성북구 삼선동1가 300 일대의 장수마을은 1만9926m²(약 6038평) 규모다. 주택 197채 대부분이 노후 불량 판정을 받았다. 물론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는다. 2004년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인근에 사적 10호 한양도성과 서울시 유형문화재 37호 삼군부 총무당(三軍府 總武堂)이 있고 급격한 경사지라 개발에 진척이 없었다. 집주인의 65%는 60세 이상이고 소득 수준이 낮아 마땅히 이전할 곳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2008년부터 주민들은 마을기업인 ‘동네목수’를 만들어 마을을 스스로 가꿔왔다. 성곽 산책로와 맞닿은 마을 꼭대기 빈집을 수리해 카페와 쉼터를 만들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빈 집 두 곳을 수리해 세를 놓았다. 한성대 벽화봉사단은 담장에 벽화를 그렸다. 마을은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장수마을을 정비하기 위한 이번 용역이 제안한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주거환경관리사업 구역 지정 계획 수립과 동시에 마을박물관 건립 등 특화마을 조성사업, 마을기업 및 마을공동체 유지 전략이다. 하지만 기존 건물을 헐고 다시 짓는 방법을 규정한 정비사업으로 분류돼 자칫 공동체 가치는 사라지고 개발 이익만 앞세우는 사업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박학룡 동네목수 대표(43)는 “마을 만들기 사업의 선례가 될 텐데 정비사업부터 추진돼 마을공동체를 훼손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장수마을만의 문화가 활성화되도록 지속적으로 시에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 마을공동체와 휴먼타운은 같다?
마을만들기 사업이 오세훈 전 시장 시절 휴먼타운 사업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가 홈페이지에서 마을 만들기 사례로 소개하고 있는 10곳에는 휴먼타운으로 지정됐던 △성북구 선유골 △강북구 능안골 △강동구 서원마을 등이 포함돼 있다. 시 관계자는 “올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새롭게 규정된 주거환경관리사업은 ‘휴먼타운’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국토해양부에 법령 개정을 요구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는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할 법적 근거와 예산이 없어 주거환경관리사업 구역으로 지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진희선 주거재생정책관은 “기존 정비사업과는 다르다. 마을 주민의 의견을 수렴해 주거의 질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간다면 마을공동체의 취지가 퇴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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