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6개-교사 11명인 초교 한달 내려온 공문만 1035건
교과부-교육청서 각각 쏟아져… 기안작성-보고-실행 1년 걸려
“지난 한 주간 처리한 공문이 23건입니다. 당일 보고하라는 지시도 많아서 출근하면 공문부터 처리해야 비로소 애들이 눈에 들어옵니다.”(서울 M고 담임교사)
교육당국이 학교폭력 대책과 지침을 쏟아내면서 공문 때문에 정작 아이들을 살필 겨를이 없다는 하소연이 일선 학교에서 나오고 있다.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지방 초등학교의 사정을 알아봤다.
경남 창원시의 화양초등학교. 전교생이 53명, 학급이 6개, 교장 교감을 포함해 교사가 11명인 미니 학교다. 이 학교의 업무 포털에 3월 한 달간 올라온 공문은 1035건이었다. 모든 교사가 열람한 뒤 1인당 100건 안팎을 처리해야 한다.
박성근 교사는 “3월에 공문을 106건 받아서 매일 4, 5건에 대해 기안서를 작성했다. 새 학기를 맞아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친해져야 하는데 공문을 처리하다보니 시간이 다 간다”고 말했다.
학교폭력과 관련한 공문이 폭증하는 이유는 교육과학기술부 시도교육청 지역교육청이 각각 공문을 보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과부가 학교폭력 대책의 일환으로 수요일을 가족사랑의 날로 지정하자 경남도교육청의 태스크포스는 ‘가족사랑의 날 운영 계획’을, 경남도교육청의 다른 부서는 ‘친구사랑 운영 계획’을, 창원교육청은 ‘학교폭력 감소 계획’을 보고하라는 공문을 각각 보내는 식이다.
공문이 1건이라고 보고서를 한 번 보내면 끝나는 게 아니다. 가족사랑의 날 운영 계획만 해도 기본 계획서를 보고한 뒤 수요일마다 각기 다른 주제로 학부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4월과 10월에는 중간보고를 해야 한다. 공문 1건의 업무가 1년 내내 이어지는 셈이다.
개별 학교의 특성을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내려오는 공문도 문제다. 전교생이 40명 남짓한 다른 농촌지역 초등학교 교장은 “학부모 중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가를 모아 학교폭력 위원회를 꾸리라는 공문이 내려왔더라. 대도시에서나 가능한 공문을 농산어촌 학교에까지 일괄적으로 보내니 잡무만 되는 꼴”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업무를 각기 다른 공문으로 내려보내는 것도 일선 학교에는 부담이다. 학교 순찰만 하더라도 교외생활 선도일지, 교실점검 안전일지, 폐쇄회로(CC)TV 관리일지, 놀이기구 점검일지를 작성하라는 공문이 따로 내려온다. 보고 형식이나 주기도 제각각이다.
이처럼 공문이 쌓이다보니 학교폭력 전수조사의 회수율이 낮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학생들이 설문에 1명도 응하지 않은 충남의 A중 교감은 “공문이 너무 많이 와서 설문조사 공문의 중요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고 털어놨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