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대전 가오중학교 국어교사로 임용된 시각장애인 1급 유창수 교사(42)는 임용고시 볼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답답하다. 공부에 앞서 읽기가 가능한 수험서를 마련하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은 전자컴퓨터나 스크린리더를 통해 촉각이나 소리로 전해지는 정보를 습득한다. 문제는 이들 기기가 텍스트 파일만 읽어낼 수 있는데 시중의 수험서는 그런 형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임용고시 두 과목(전공과 교육학)을 공부하려면 먼저 수험서의 내용을 일일이 텍스트 파일로 만드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김 씨는 권당 400∼500쪽의 현대소설론과 고대소설론 고대시가론 국어교육론 등 6, 7권의 전공 수험서를 마련하기 위해 6개월가량의 시간을 써야 했다. 딸과 아내, 시각장애인복지관 도우미가 같이 이 작업에 매달렸다.
교육학은 마침 텍스트 파일로 만들어 놓은 기출문제집이 시각장애인복지관에 있어 활용했지만 문제집을 손에 넣은 것은 거의 우연에 가까웠다. 김 씨는 “전국에 20개 안팎의 복지관이 있는데 도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전부 알아볼 생각으로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6번째 도서관에 가서야 문제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7년 시각장애인 최초로 일반학교 교사(영어)가 된 충남 천안의 불당중학교 최유림 교사(29)는 교재 연구 등에서 여전히 애를 먹어야 한다. 교과서나 교사용지침서 등이 텍스트 파일로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겨우 워드 작업을 통해 텍스트 파일을 만들어도 교재가 학교마다 다르고 수년에 한 번씩 바뀌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 씨는 “임용고시 때도 20여 권의 전공 수험서를 텍스트 파일로 만드느라 고생했는데 교사가 돼서도 불편함은 마찬가지”라며 “시각장애인은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어려움에 직면한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출판사가 도서제작용 원본 텍스트 파일을 시각장애인들에게 제공해주면 해결된다. 하지만 출판사는 저작권을, 저자는 판권을 들어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 김 씨도 “출판사와 저자에게 이런 요구를 했다가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털어놨다.
2009년 3월 개정된 도서관법은 중앙도서관이 출판업자에게 디지털 파일(텍스트 파일) 납본을 요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지만 강제 규정이 아니어서 호응도가 높지 않다. 중앙도서관 장애인센터가 올 들어 3월 말까지 출판사에 디지털 파일 200여 개의 납본을 요구했지만 20%만이 응했다. 김영일 장애인센터 소장은 “도서관이 디지털 파일을 시각장애인에게 도서용 포맷으로 바꾸어 제공할 뿐 아니라 장애인들도 ID 등을 통해 암호화된 방식으로 활용해 유출 우려는 없지만 출판사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며 “지식사회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사회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려면 새로운 분야의 지식과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단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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