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예나]책 안 읽는 청소년… 책 좀 보내달라는 ‘감옥에서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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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8일 03시 00분


수감 중에도 책을 읽고 싶다며 기자에게 보낸 편지. 그는 기업을 운영하다가 부도를 맞았지만 독서를 통해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수감 중에도 책을 읽고 싶다며 기자에게 보낸 편지. 그는 기업을 운영하다가 부도를 맞았지만 독서를 통해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전북 전주시 우체국 사서함 ○○○번. 생소한 주소였다. 지난해 10월 말, 편지를 받았을 때 발신인을 알 수 없었다. 7장에 눌러 쓴 편지가 들어있었다. 이렇게 시작했다. “저는 남들이 상상도 못하는 이곳에 영어의 몸으로 들어온 참혹한 인간입니다.”

그는 작은 기업을 운영했지만 경기 침체로 자금 사정이 어려워졌다. 결국 부도를 맞아 교도소에서 2년을 보내게 됐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서 필요한 물건을 보내달라고 집에 얘기하지 못할 사정이라고 했다.

기자에게 부탁한 건 의외의 물품이었다. 책. “먹는 것, 입는 것은 최악의 조건에서도 견딜 수 있는데, 읽고 싶은 책을 접하지 못하는 건 미칠 것 같습니다. 새로운 각오와 계획을 세워가며 하루하루 의미 있게 보내고 싶습니다. 이곳에서는 독서가 재산입니다.”

경제와 교양 도서를 읽고 싶다고 했다. 평소 빼놓지 않고 읽었다며 지난 신동아와 주간동아를 챙겨달라고, 또 영한사전과 옥편도 있으면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신문에서 ‘기자의 눈’ 칼럼을 봤던 기억이 떠올라 용기를 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몇 번이나 “부담을 드리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고 했다.

이런 종류의 편지는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책을 통해 새로운 인생 계획을 세우고 싶어 하는 그의 바람이 전해져 왔다. 지난해 11월 1일, 경제 및 교양서적과 DBR(동아비즈니스리뷰), 신동아 과월호를 모아 편지와 함께 부쳤다. 회사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

책은 이처럼 누군가에게 간절하다. 하지만 많은 청소년이 홀대한다. 여성가족부는 전국 초중고교생 65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1 청소년 매체 이용 실태조사’ 결과를 7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청소년 4명 중 1명(24.9%)은 한 달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특히 중고교로 갈수록 책을 잘 읽지 않았다.

반면 영상매체 이용 시간은 늘어난다. 청소년의 71.8%는 온라인게임에 하루 평균 1시간 36분(주말은 2시간 48분)을 들였다. TV도 평일에 2시간 6분, 주말에 4시간 12분이나 봤다. 휴대전화 보급률은 2007년 68%에서 지난해 90.1%로 껑충 뛰었다. 이 휴대전화로 여학생은 문자메시지, 남학생은 게임을 많이 한다.

영상매체와 휴대전화가 재미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기에 빠지는 바람에 활자를 읽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지혜를 얻고, 자신의 미래를 그려볼 기회를 잃을까 걱정된다.

최예나 교육복지부
최예나 교육복지부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독서의 해’다. 독서 인구를 늘리기 위해 정부가 팔 걷고 나섰다. 아무리 책을 읽자고 외쳐도 독자 스스로 필요를 느끼지 않으면 공허한 운동으로 끝날 수 있다.

“세상과 소통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해 11월 말, 기자는 답장을 받았다. 올해 3월에도 편지가 왔다. 아직 답장을 하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또 소포를 꾸려야겠다.

최예나 교육복지부 yena@donga.com
#사회#독서#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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