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경기 가평의 자라섬은 물이 안 빠져 비만 오면 진흙탕으로 변하던 곳이었다. 장맛비라도 내리면 금세 물바다가 됐다. 물이 빠지면 밀려온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남았다. 폐허나 다름없었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 자라섬은 전 세계 재즈아티스트들이 손꼽는 꿈의 무대로 변신했다. ○ 진흙탕 섬이 재즈천국으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인재진 씨(47·호원대 방송연예학부 교수)가 자라섬을 처음 찾은 것은 2003년. 황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는 것이 당시 인 씨의 심경이었다. 그러나 외국의 전통 있는 재즈페스티벌처럼 아기자기한 축제를 연다면 꽤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면 물에 잠겼던 섬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오히려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1년을 준비한 끝에 2004년 가을 첫 재즈페스티벌이 열렸다. 인 씨가 인맥을 총동원해 섭외한 150여 명의 아티스트가 무대에 올랐다. 폭우 속에 열린 제1회 페스티벌은 3000여 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10월 8회 페스티벌이 열렸다. 국내 50여 개, 해외 20여 개 등 21개국에서 80개가 넘는 팀이 참가했다. 지난해까지 누적 관광객이 90만 명에 이르며 이제는 아시아 최대의 재즈축제로 자리 잡았다. ‘재즈 막걸리’ ‘재즈 와인’이 등장하고 미용실과 모텔에도 ‘재즈’라는 간판이 걸리는 등 오지나 다름없던 가평은 이제 ‘한국의 뉴올리언스(미국 재즈의 고향)’로 변하고 있다.
재즈페스티벌은 내년이면 10년을 맞는다. 현재의 틀을 유지할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지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인 씨는 “예술축제를 한 10년 정도 하면 변화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며 “축제기간을 늘리거나 계절별 축제를 벌이는 것 등 여러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남녀노소 모두가 즐거운 길
10년 가까이 재즈페스티벌이 열리면서 자라섬의 모습도 180도 바뀌었다. 66만2000m²(약 20만 평) 규모의 자라섬은 거대한 생태체험장으로 탈바꿈했다. 계절마다 다양한 야생화가 섬 곳곳을 장식한다. 갖가지 형태의 캠핑카가 들어선 캠핑장은 마치 유럽의 휴가지를 연상케 한다. 2009년에는 3만5000m²(약 1만600평) 규모의 이화원(二和園)이 문을 열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영남과 호남, 한국과 브라질의 화합을 주제로 한 식물원이다. 전남 고흥군이 주산지인 유자나무와 경남 하동군의 녹차나무가 함께 재배되고 한국과 브라질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는 커피나무도 있다.
자라섬 외곽을 따라 조성된 강변길은 화려하지 않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약 1시간 30분 동안 6km 정도의 길을 걷다 보면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북한강 굴봉산 그리고 경춘선 열차까지 다양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인 씨는 거의 매일같이 이 길을 걷는다. 휴일에는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온다. 그는 5년 전 가평으로 아예 이사 왔다. 자라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직접 집을 지었다. 인 씨는 “아내가 국내에 있을 때에는 가급적 일정을 잡지 않고 가평에 머무른다”며 “강변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가 특히 아내 같은 사람에게는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유명 재즈가수 나윤선 씨(43)다. 나 씨는 1년 중 절반 정도를 공연차 해외에 머무른다.
북한강과 맞닿은 강변길 끝자락은 강태공들이 몰리는 낚시 포인트다. 인 씨는 “낚시를 해도 좋고, 캠핑에도 좋고, 그저 한 바퀴 걷기만 해도 좋은 곳”이라며 “혼자서 오면 나만 알고 있는 낚시 포인트를 알려줄 수도 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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