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5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다단계 사기를 저지르고 중국으로 도피한 조희팔 씨(55)가 지난해 말 현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하지만 시신이 화장돼 유전자 감식을 통한 과학적 확인이 불가능하고 조 씨 측근이 한국 정서와 맞지 않게 장례식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등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아 위장 사망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조 씨가 지난해 12월 한국에서 온 여자친구 K 씨 등과 중국 칭다오(靑島)의 한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급체를 호소해 병원으로 옮기던 중 구급차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조 씨는 식사 후 가라오케에서 양주를 마시며 가수 나훈아의 ‘홍시’를 부른 뒤 K 씨에게 복부 통증을 호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 씨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간 대구와 서울 등지에 다단계업체를 차린 뒤 건강용품 판매사업으로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3만여 명을 투자에 끌어들여 3조5000억 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씨는 2008년 12월 경찰과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중국으로 밀항한 뒤 도피 생활을 해왔다.
경찰 조사 결과 조 씨는 53세 중국동포 조영복으로 신분을 세탁해 중국 옌타이(煙臺)에 숨어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국내에 머물고 있는 조 씨의 외조카 유모 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이 같은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은 유 씨에게서 조 씨의 응급진료기록과 사망진단서, 화장증 등을 확보한 뒤 현지 병원과 담당 의사 등을 통해 지난해 12월 18일 조 씨가 사망한 것으로 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21일 조 씨의 장례식 장면을 촬영한 51초 분량의 동영상도 증거로 공개했다. 조 씨 측근이 찍은 이 동영상을 보면 조 씨로 보이는 시신이 투명한 관에 입관돼 있고 주변에 조 씨의 자녀와 여자친구, 부하 직원들이 모여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경찰은 조 씨의 딸 컴퓨터에서 해당 동영상을 확보했다. ▶ [채널A 영상] ‘3조5000억’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수상한 죽음
하지만 조 씨가 경찰과 피해자들의 추적을 따돌리려 숨진 것으로 위장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찰은 밝혔다. 우선 조 씨 사망 직후 시신이 화장돼 유전자 감식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 의심을 사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화장을 하면 고온에 뼛속 유전자가 모두 소실돼 해당 시신이 조 씨가 맞는지 과학적으로 입증할 길이 없다”고 설명했다.
갑작스러운 죽음 후 열린 장례식이라면 숙연한 가운데 치러졌을 텐데 굳이 카메라를 들고 시신 얼굴을 포함해 동영상 촬영을 한 점도 미심쩍다는 지적이 많다. 수배된 피의자가 사망했다는 거짓 증거를 만들어 수사를 단념시키려는 속셈이라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조 씨의 사기 피해자들은 “피해액과 피해자가 너무 많아 보상하기 어려운 까닭에 조 씨가 위장 사망을 택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서류 위조나 공무원 매수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도 위장 사망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조 씨가 자작극을 벌였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16일 공범 2명의 신병을 중국 공안부에서 넘겨받아 최소 300억∼400억 원으로 추정되는 조 씨의 은닉 재산을 추적하는 한편 실질적 자금관리인 강모 씨를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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