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주한 중국대사관 맞은편 옥인교회 앞 ‘자생초마당’에 세워진 작은 화이트보드에는 이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자유 생명 진실을 위한 지킴이 촛불’이라는 의미의 시민봉사단체 ‘자생초’의 회원 10명은 2월 14일부터 100일째 이곳에서 열린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집회 현장을 지켜왔다.
자생초 회원은 대부분 평범한 지역주민이다. 이홍식 씨(73)는 6·25전쟁 때 북한에서 피란 와 지금까지 60년을 종로구 청운동에서 살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이 씨는 최근 100일간 매일 아침마다 옥인교회 앞으로 출근해 회원들과 함께 집회를 준비해 왔다. 야외에서 고생하는 참석자들이 안쓰러워 주머닛돈으로 매일 밥값을 대고 있기도 하다. 이 씨는 “나 역시 평양이 고향이라 탈북자 북송 문제에 느낌이 남달랐다. 책임 없다는 중국에 항의하기 위해 나오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100일이 됐다”고 했다.
종로구 신교동 앞 쪽방에 사는 백창기 씨(54)도 1회 집회부터 자리를 지켜 온 자생초 멤버다. 백 씨는 “인근 주민 중 시끄럽다고 집회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조용히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다”며 “자생초 회원들이 매일 집회 전후로 동네를 청소하고 중국 국기를 불태우는 과격 시위자들을 말린 덕분에 이제 주민들 사이에서도 집회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100번째 집회를 맞은 것이 뿌듯할 법도 한데 이들은 하나같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탈북자 인권에 대한 국내외 관심을 이끌어내고 연예인과 젊은층의 동참을 유도하는 등 성과도 많지만 아직 일궈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박세환 씨(61·대한예수교 장로회 백승교회 목사)는 “중국 정부가 탈북자 강제북송을 중단한다고 선언하기까지 최소 1000일은 더 투쟁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3월 6일부터 지난달 20일까지 46일간 단식투쟁을 벌이다 병원에 입원했던 박 씨는 최근 다시 자생초마당으로 나와 현장을 지키고 있다. 자칭 자생초마당의 ‘마당쇠’로 역시 1회 집회부터 참석해 온 강재천 씨(52)는 “100일을 지켜봤지만 중국 정부는 아직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우리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중국대사관이 명동으로 이사 가면 따라가서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가 국민의 관심사에서 멀어지는 것이 두렵다는 회원도 있었다. 2003년 가족과 떨어져 탈북한 뒤 2008년 홀로 한국에 입국한 박희연(가명·29·여) 씨는 “내일이면 다시 언론과 일반 시민의 관심이 시들해질 것 같아 사실 101번째 집회를 여는 것이 두렵다”며 “중국 정부가 이제 탈북자도 모자라 탈북자를 도운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씨까지 구금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관심이 시들해질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열린 100회 집회에는 박선영 자유선진당 국회의원과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 우전룽(武振榮) 중국민주화운동 해외연석회 한국지부장을 비롯해 부산, 대구, 광주, 대전, 경기 안산에서 올라온 ‘탈북난민구출을 위한 생명버스’ 참가자 1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다음 달 탈북난민 북송 반대를 위한 국제회의를 열어 매달 한 번씩 세계 각국의 중국대사관 및 영사관 앞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집회를 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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