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 1부/당당히 일어서는 다문화가족]<4> 고졸 중국교포 출신으로 초등교 다니는 강월춘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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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미곡초교 4학년엔 꿈꾸는 39세 ‘이모’가 있습니다

강월춘 씨가 수업을 듣고 나서 딸 정우정 양, 아들 윤홍 군과 손잡고 학교 복도를 걸어 나오고 있다. 강 씨는 경기 안성시 양성면 미곡초등학교 4학년, 딸과 아들은 각각 3학년과 1학년이다. 그는 아이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느라 더할 수 없이 행복하다고 한다. (위) 미곡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 강월춘씨와 ‘동급생’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학생들은 강 씨를 ‘이모’라고 부르며 가족처럼 지낸다. (아래) 안성=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강월춘 씨가 수업을 듣고 나서 딸 정우정 양, 아들 윤홍 군과 손잡고 학교 복도를 걸어 나오고 있다. 강 씨는 경기 안성시 양성면 미곡초등학교 4학년, 딸과 아들은 각각 3학년과 1학년이다. 그는 아이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느라 더할 수 없이 행복하다고 한다. (위) 미곡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 강월춘씨와 ‘동급생’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학생들은 강 씨를 ‘이모’라고 부르며 가족처럼 지낸다. (아래) 안성=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22일 오후 경기 안성시 양성면 미곡초등학교 2층 4학년 교실에 ‘어머님 은혜’가 울려 퍼졌다. 학생 17명이 수화로 노래가사를 표현하는 수업. 학생들은 유병숙 담임교사(52·여)의 손짓을 밝은 표정으로 따라했다.

교실 맨 뒤편에 여학생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키가 머리 하나는 컸다. 대부분은 캐릭터가 그려진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이었지만 이 여학생은 성인용 정장치마를 입고 있었다. 미곡초에서 ‘이모’로 불리는 강월춘 씨(39·여).

○ 엄마는 내 친구

그의 교과서 맨 앞장에는 ‘미곡초등학교 4학년 강월춘’이라고 쓰여 있다. 수업에 외부인으로서 참관하는 게 아니라 진짜 이 학교의 학생이다. 2009년 1학년으로 입학해 4년째 다니고 있다. 중국교포 출신으로 2003년 결혼하면서 한국에 왔다.

한국생활을 6년 넘게 하다가 코흘리개 어린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한국어 때문이다. 중국교포지만 한국어를 전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에서 태어났다. 세 살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홀로 남은 어머니는 한족 출신인 현재 아버지와 재혼했다. 새아버지는 강 씨를 친딸처럼 따뜻하게 대해줬지만 한국어는 못하게 했다. 집 안에서는 철저히 중국어만 썼다. 강 씨는 스스로를 한족으로 여길 정도로 철저히 중국인으로 살아왔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한국어에 대한 걱정이 컸지만 남편을 믿고 한국에 왔다.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여덟 살 많은 남편은 유달리 말수가 적었다. 주변에 말 붙일 사람도 없었다. 게다가 딸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보낸 가정통신문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강 씨의 고민은 깊어졌다. 원형탈모가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강 씨는 고심 끝에 학교에 가기로 결심했다. 어느 누구의 조언도 없이 온전히 자신이 선택했다.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다문화학교도 아닌 초등학교를 골랐다. 이미 중국에서 고교를 졸업했지만 “초등학교에 가서 한국어를 처음부터 배우겠다”고 생각했다.

걱정 반 기대 반 속에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학교는 집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딸 정우정 양(9)과 아들 윤홍 군(7)이 차례로 같은 학교에 입학해 각각 3학년과 1학년에 다닌다. 오전 오후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등하교를 한다.

때로는 아이들이 엄마의 서툰 한국어를 바로잡아 주고 때로는 강 씨가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준다. 친구 사이나 다름없다. 강 씨는 “한국어를 못했을 때에는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할 수 있어 정말 좋다”고 말했다.

초등학생으로 4년째 별 탈 없이 지내기까지 학교의 배려가 컸다. 강 씨가 입학 가능성을 물었을 때 대부분의 교직원이 당황스러워했다. 서른 살을 훌쩍 넘은,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결혼이주여성이 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학교 측은 경기도교육청과 안성교육지원청 등 여러 기관에 문의했다. 재량에 맡기겠다는 말을 듣고 학교 측은 입학을 허용했다.

○ 의상실 여는 것이 꿈

처음에는 모두가 어색해했다. 교직원은 강 씨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다. 강 씨는 교직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했다. 정답은 학생들이 찾았다. 강 씨와 같은 반 학생들이 그를 이모라고 부르며 따르기 시작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함께 지내는 것이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미술이나 체육수업, 급식 때마다 강 씨는 같은 반 학생들을 엄마처럼 도와줬다. 김한지 군(10)은 “3학년 때 이 학교로 전학왔을 때 우리 반에 선생님이 두 명이라고 생각했다. 이모가 어려운 공작수업도 도와주고 다치면 치료도 해줘서 좋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 교직원들도 그를 이모로 부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강 씨는 사실상 보조교사 역할까지 한다. 강 씨를 2년째 가르치는 유 교사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어린 학생을 강 씨가 정말 이모처럼 돌봐준다. 교사들에게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강 씨는 집에서 키운 야생화 모종을 가져와 학교 화단을 장식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잡초를 뽑고 물을 주며 화단을 가꿨다. 첫해부터 지켜본 노락철 교장(60)은 “지금은 교직원이나 학생 모두 강 씨를 특별한 존재로 보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다. 남과 다르게 보지 않는 시선이 바로 진정한 다문화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교실 뒤편에는 강 씨의 자기소개서가 걸려 있다. ‘장래 희망: 디자이너’라고 적혀 있다. 집 가까운 시장에 작은 의상실을 열어 직접 만든 옷을 팔려고 한다. 중국에 있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아 작은 의상실에서 일한 적도 있다. 요즘도 가족이 입을 옷은 대부분 직접 만든다. 남다른 손재주가 소문나면서 이웃들이 옷 수선을 부탁할 정도다.

꿈을 이루기 위해 강 씨는 2년 뒤 중학교에 진학할 생각이다. 한국어를 잘하게 되면 일을 해서 의상실 차릴 돈을 벌 계획이다. 강 씨는 “이렇게 인터뷰까지 할 정도로 한국어를 하기까지는 선생님들의 도움이 컸다. 졸업 때까지 잘 다녀서 지금보다 더 나은 실력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안성=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미곡초등학교#중국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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