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효과 위해 기준치 2배 써… 환자들 고통 호소땐 진통제
치과 21곳 의사 등 42명 입건… 美체류 대표 체포영장 신청
A측 “일반치과서도 사용”
인체에 해로워 사용이 금지된 공업용 과산화수소수를 이용해 4000여 명에게 치아미백 시술을 한 유명 치과 그룹이 경찰에 적발됐다. 치아 미백시술에 일정 농도의 과산화수소수가 필요하지만 이 업체는 치료 단가를 낮추기 위해 법정 기준 농도의 두 배가 넘는 공업용 과산화수소수를 쓴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외 111개 치과병원을 지점으로 둔 이 업체는 소속 병원 21곳이 이 같은 방식으로 불법 시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치아 미백시술을 할 때 34.5% 농도의 공업용 과산화수소수를 쓰도록 산하 치과에 지시한 혐의로 A치과그룹 대표 김모 씨(46)의 체포영장을 신청했다고 24일 밝혔다. 김 씨는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던 지난해 10월 미국으로 출국해 현재까지 체류 중이다.
경찰은 또 공업용 과산화수소수로 만든 무허가 치아미백제를 2008년 6월∼2011년 12월 시술에 사용한 혐의로 A그룹 산하 병원장 박모 씨(35) 등 치과의사 22명을 포함해 상담실장 등 4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 병원에 공업용 과산화수소수를 이용한 불법 치아미백제를 납품하고 환자들이 항의해 올 때의 대처법을 알려준 C사 대표 등 제조업체 관계자 47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치아미백은 탈색 기능이 있는 과산화수소수를 희석해 치아연마제와 섞은 뒤 젤리 형태로 만들어 환자의 치아에 붙이는 시술이다. 과산화수소는 산화력이 강해 섬유 표백이나 폐수 처리 등에 사용되는 독성 물질이다. 환경부는 과산화수소가 6% 이상 혼합된 물질을 유독물로 분류하는데 식품의약품안전청 기준에 따라 15% 농도 이하일 경우에만 인체에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A그룹은 법적 기준치의 두 배가 넘어 통상 공업용으로 쓰이는 34.5%의 과산화수소수로 미백제를 만든 것이다. 독성 물질의 경우 보통 농도가 높을수록 가격이 저렴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그룹이 사용하는 불법 미백제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미백제로 시술을 받으면 음식물을 섭취할 때 과산화수소 성분이 녹아내려 입과 목 식도에 심한 자극과 약품 화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식약청도 무허가 치아미백제의 위험성을 여러 차례 경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미백제로 시술을 받은 환자 중 상당수가 이가 시리는 등 부작용을 호소했지만 의사들은 원래 그러니 참으라고 하거나 진통제를 처방하는 등 임시방편으로 대응해온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적발된 병원들은 치아미백을 ‘미끼 상품’으로 내걸어 환자를 끌어모은 뒤 저가에 시술해주며 임플란트 등 고가 진료를 유도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런 방법으로 무허가 미백시술을 받은 환자가 40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A치과 측은 “단시간에 높은 미백 효과를 볼 수 있어 고농도 과산화수소수를 쓰고 있고 심각한 부작용 사례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며 “우리뿐 아니라 일반 치과에서도 오래전부터 이런 시술을 해왔는데 경찰이 왜 문제를 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식약청 관계자도 “농도 15% 이상 과산화수소수를 인체용으로 제조하거나 유통시키는 행위는 불법이지만 의사가 이런 무허가 재료를 치료에 사용하는 행위에 대해선 명확한 법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기준 농도가 넘는 과산화수소수를 약품에 넣는 것이 금지된 만큼 의사의 시술행위도 처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과산화수소(hydrogen peroxide) ::
수소와 산소의 화합물로 옅은 푸른색을 띤다. 산화력이 강해 소독제나 표백제로 쓰이고 플라스틱 폭약 제조에도 사용된다. 90% 수용액은 로켓의 추진제, 잠수함 엔진의 작동용으로 쓰인다. 독성과 자극성이 강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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