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아빠 됐습니다. 23일에 병원 가면 딸인지 아들인지 알려준대요. 솔직히 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시잖아요, 아버지가 저 때문에 얼마나 많이 학교에 가셨는지. 저랑 똑같은 놈 나오면 머리 아플 것 같아요.
아빠가 되고 보니 선생님께 더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1학년 때 ‘삼일공고 명예경찰’을 시켜주신 덕분에 책임감이 뭔지 알게 됐죠. 누가 저 같은 사고뭉치한테 친구들 선도하라고, 주먹 휘두르고 담배 피우는 문제아들 붙잡으라고 맡기겠어요. 흡연하는 학생 당당하게 적발하려고 중3 때 시작했던 담배도 끊었는데…. 군대 가서 다시 피웠거든요. 결혼하고 아기 가지면서 다시 끊었어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려고요.
아내가 명예경찰 단복을 보고 “당신이 뭔데 왜 경찰복을 갖고 있느냐”며 버리라고 했어요. 우습죠? 서른, 고등학교 졸업한 지 11년인데 아직도 갖고 있거든요. 빳빳한 셔츠에 새겨진 독수리 마크, 노란색 선명한 글씨는 아직도 절 꼼짝 못하게 해요.
선생님께서 지난해 11월 주례 서 주실 때 그러셨잖아요. “현석이가 중학교 때 약간 놀긴 했지만, 고등학교 때 학교생활 충실히 하더니 예쁜 아가씨를 만났다”고. 마흔여섯은 주례 서기 너무 젊은 나이라고 계속 거절하셨지만 인생에 딱 한 번인 결혼, 꼭 선생님이 해주셨으면 했거든요.
제가 이래봬도 아내와 장모님한테 이미지가 좋습니다. 다 선생님 덕분이죠. 앞으로도 열심히 잘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박현석 올림 ■ 명예경찰 이끄는 김동수 교사가 제자들에게
박 사장, 아니 현석아.
아버님 식당 이어받아 열심히 하는 널 보면 참 기특하다. 어느새 아빠도 되고, 축하한다. 시간이 참 빠르구나. 하긴 네가 우리 명예경찰 2기(1999년)였는데, 올해 벌써 15기를 받았으니.
기억나니? 내가 일진이었던 네게 명예경찰 들어오라고 했을 때. “싫다”고 단번에 거절했던 거? 뭐, 지금도 매년 신입생 들어올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니까.
○ “야! 박현석! 명예경찰 안 할거냐”
널 괴롭혔지. 수업시간마다 “야! 박현석!!! 명예경찰 안 할 거면 나와서 이 수학문제 풀어 봐”라고. 나중에는 네가 짜증난다고 울었잖아. 나도 당황했거든. 하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 ‘요 녀석아, 협박 성공이다!’
명예경찰은 1998년 8월 시작됐지. 그때 국무총리실이 청소년 범죄가 늘어난다며 각 시도에 1개씩 시범학교로 지정하게 했던 거야.
대원 60명의 절반은 모범생이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소위 ‘문제아’로 채웠어. 네 선배들 중 날렸던 애들 많잖니. 1기 대장(31)도 종로파였고. 파장동 지동 세류동파 깡패 ‘시다바리’들…. 거기 있다가 19세가 되면 수원의 유명한 조직인 남문파나 북문파로 귀속되는 거잖니. 금품갈취 절도 폭행 저질렀던 건 기본이었지. 솔직히 운영을 맡은 나도 자신 없었다.
원래 1주일에 한 번씩 수원중부경찰서에서 호신술, 교통지도 등의 교육만 받으면 됐지. 하지만 그게 너희에게 도움이 되겠니? 유치장에 데려가 “나쁜 짓하면 이런 데 오는 거야”라고 말했고, 경찰학교에 가서는 “너네도 나중에 봉사하고 살아”라고 권유했지. 저녁에는 문제아들을 수원천에 불러 삼겹살도 구웠어. 콜라 잔을 부딪치며 말했지. “선생님 한 번만 믿고 따라와 다오.” 너도 알잖니. 그런 아이들은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거.
문제아들 표정이 점점 달라지더구나. 그런데 10월 말, 경찰서로부터 명예경찰을 해체하라는 연락이 왔어. 운영 기간이 다 됐으니까.
“말도 안 돼요. 왜 이제 와서 끝내요? 계속하면 안 돼요?” 그땐 아이들이 나를 붙잡아줬어. 당시 학생부장이던 소진억 교장선생님도 “계속 해보자”고 밀어주셨지. 이렇게 전국 유일의 학생 명예경찰이 탄생한 거야.
‘텍사스골목’ 폭력을 소탕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 우리 학교가 있는 수원 활터 주변의 유명한 골목. 청량리 588 같은 술집이 즐비했던…. 깡패들에게 끌려가 흠씬 맞고 돈이나 옷을 뺏기곤 했잖니. 우리 학교를 포함해 인근 6개교 선생님들의 큰 걱정거리였지.
너희한테 자신감과 책임감을 주려고 경찰복과 똑같은 옷을 입히기로 했어. 경찰서에서 안 된다는 걸 사정사정했다. 단복이 주는 효과가 크더구나. 녀석들이 얼마나 위풍당당해지던지. 난 당구 큐를 들었어. 혹시 깡패들이랑 마주치면 너희는 내가 지켜야 할 것 아니니. 사실 지금 와서 고백하는데 선생님도 깡패는 무서웠단다.
매일 오전 7시 반, 오후 4시 50분부터 각각 한 시간씩 순찰을 돌기 시작했지. 쉬운 일 아닌데 잘 따라와 줬다. “소란 피우지 말고 나가시죠” “담배는 좀 끄시죠” 하며 당당하게 깡패들에게 말하던 그 장면이 기억나는구나. 아슬아슬했던 순간도 있었지. 순순히 물러설 깡패들이 아니잖니. 그래도 우리 애들이 덩치, 숫자 어디 하나 빠지는 데가 있니? 대개 그 애들은 2, 3명이니 우리 1개 순찰조(30명)한텐 못 당하더구나. 기 싸움에서 지는 거지.
우리 집 창문이 여러 번 깨졌다. 어린 애들이 경찰복 입고 골목을 누비니 약 올랐겠지. 그래도 3년쯤 뒤부터는 더이상 골목에서 맞는 학생이 생기지 않았다.
그 뒤로는 ‘담배와의 전쟁’이 시작됐지. 골목에 깡패들이 사라지면서 담배 피우는 학생이 늘었던 거야. 오죽하면 텍사스골목이 담배골목으로 불리게 됐을까. 꽁초로 ‘눈밭’이 돼버린 바닥과 지붕 때문에 학교로 주민들 민원전화가 끊이지 않았어. 그때도 우리 문제아들 도움이 컸다. 언제 어디서 담배를 피우는지 잘 알더라고.
1, 2학년이면서 3학년한테 당당하게 “담배랑 라이터 주세요”라며 수거해 피우다 걸린 담배 길이, 남은 담배 개수, 이름, 학교, 학년 적고 봉투에 담아오더구나. 처음에는 다른 학교에서 항의전화 많이 왔어. 뭔데 자기네 애들을 잡아 학생부로 알리냐고…. 난 말했지. “불만이시면 담배골목 순찰 그쪽 학교에서 하세요!”
자동차 매매 일을 하는 7기 대장 임인훈(25)이 그러더라. “명예경찰 안 했으면 고등학교 와서도 왕따 주동했을 거예요”라고. 선후배·친구랑 잘 지내는 법을 배워서 군대와 사회생활도 편하게 했다고.
1기 대장은 종로파에 있을 때 새겼던 문신을 스스로 지웠지. 빙초산으로 살을 태웠대. 흉터를 보고 왜 그랬냐고 다그쳤다. 이렇게 말하더구나. “그전까지 절도나 폭행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제가 너무 창피해요. 지금 명예경찰이잖아요. 아팠지만 후회 안 해요. 다르게 살아봐야겠다고 고민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선생님께서 대장을 맡겨주셔서 개과천선했습니다.”
○ “애정-관심 보여주니 변하더구나”
현석이 넌 말할 것도 없지. 3학년 여름방학 직전 사고를 쳤어. 네가 아버지 식당에 온 손님 차를 슬쩍해서 친구들 태우고 가다 전복됐다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1학년 때부터 명예경찰 활동을 누구보다 열심히 했던 녀석이기 때문에.
순간적인 호기심이었다지만, 징역 6개월이 나와 걱정했다. 다행히 그때 명예경찰이 경기도경찰청장 표창을 받아서 절반으로 감형됐지. 이후에 네가 정신 차리고 아버지 식당 물려받겠다고, 군대도 취사병 지원하겠다며 한식조리사자격증 따는 걸 보고 기특했어. 참, 근데 이거 네 아내한테는 비밀이니?
너희에게 말 못했던 게 있단다. 나도 소싯적에 선생님들 속깨나 썩였다는 거. 중학교 2학년 때 강원도에서 서울로 전학을 왔는데, “촌놈”이라며 시비를 걸더라고. 지기 싫어 맞섰을 뿐인데, 어느 샌가 나는 문제아가 돼 있더구나.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더라, 문제아에게는. 그런데 고2 때 기술선생님은 달랐어. 담임도 아니었는데 “이놈아, 사람 좀 되라”며 때리고, “도서관에서 공부 좀 하라”고 날 귀찮게 했다. 그 덕분에 1년 재수 끝에 단국대 수학교육과에 진학할 수 있었단다.
어긋난 아이들을 잡아주고 싶었어. 1990년 서울과 안양에 있는 인문계고에도 갈 수 있었지만 삼일공고로 왔고, 줄곧 학생부(학생자치부)에 있었던 이유란다.
올해 신입생 중에 널 닮은 녀석이 있어. 너처럼 끈질기게 설득(?)해서 들어왔어. 3월에 화성서부경찰서에서 학교로 ‘학교폭력 조사대상자 통보’ 공문이 날아왔어. 지난해 8월부터 올 2월까지 같은 학교 학생에게 폭행 1회, 공동폭행 6회, 공갈 1회를 저질러 기소된 적 있다고. 얘가 그러더라. “선생님들한테 찍혔다고만 생각했어요. 근데 명예경찰 하니 모두 관심 가져주셔서 좋아요. 변하고 싶어요”라고. 중학교 때는 왜 그렇게 말썽을 피웠느냐고 물으니 순박하게 웃으면서 뭐라는 줄 아니? “에이 쌤∼ 그건 철없었을 때 이야기죠!”
지난달 내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는 걸 알고, 너를 비롯해 대원들이 축하한다고 연락 많이 왔어. 교사로서 당연한 일을 한 건데 너무 큰 상을 받아 부담스러울 뿐이다.
내게는 너희가 준 믿음이 가장 큰 상이야. ‘교사가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면 문제아도 절대 비뚤어지지 않는다’는 게 내 신념이거든. 너희들이 그 믿음에 확신을 준 덕분에 내가 지금도 명예경찰 대원들과 아침저녁으로 순찰할 수 있는 거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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