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편지/장세진]“백일장에 꼭 가야 하나요?”…특성화高 문예지도의 비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8일 03시 00분


지난 주말 우여곡절 끝에 광주대 전국고교생백일장을 다녀왔다. ‘우여곡절 끝에’라고 말한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어서다. 광주대 백일장은 예선 통과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우리 학교 학생 2명도 예선을 통과했다. 두 학생을 인솔하면서 녹색에너지체험전을 관람시키려 다른 학생 두 명도 데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백일장 이틀 전 한 학생이 할머니 생신을 거론하며 못갈 것 같다고 말했다. 중요한 가족 행사지만 학교를 대표하는 백일장 참가가 우선이라고 봤다. 학생이 자신의 어머니와 다시 상의해 백일장 참가 쪽으로 결론이 났다. 안도하며 퇴근했는데, 다른 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다고 했다. 녹색에너지체험전에 데려갈 학생이어서 “그렇다면 별 수 없지” 하며 허락했다. 그런데 또 다른 학생의 어머니가 전화를 해왔다. 그 학부모는 대뜸 “백일장에 꼭 가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더니 그러면 보내겠다고 대답했다. 30분쯤 지나서 이번엔 학생이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부모가 성적 떨어진다며 시를 못 쓰게 한다는 것이었다. 행사 당일 새벽, 남은 한 학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동생이 아파 간호할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

결국 행사에는 한 학생만 데리고 다녀왔다. 20년 넘게 문예 지도를 하며 처음 겪은 황당한 일을 시시콜콜 공개하는 것은 다같이 생각해 볼 점이 있어서다. 단순히 특성화고 문예지도교사의 비애로 치부할 일일까. 우리 특성화고 학생들이 이런저런 환경에 휘둘려 스스로 열정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장세진 군산여상 교사
#독자 편지#장세진#특성화고#백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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