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걸려 모르겠지…” 사람 안쓰고 음식 아무거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8일 03시 00분


■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4년… 장기요양원 여전히 부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다음 달이면 도입 4년을 맞는다. 노인 돌봄 서비스를 국가가 대신 제공해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한편 노후 생활을 안정적으로 만들자는 취지였다.

첫해에 5033개였던 노인장기요양기관은 지난해 2만3566개로 약 4.7배가 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말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본인부담을 제외하고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지출된 비용은 2008년 1148억5273만 원에서 지난해 6월 2230억6105만 원으로 약 94.2% 늘었다. 정부는 고령화가 본격화하면서 더 많은 노인에게 장기요양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지만 부실한 운영실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 또한 적지 않다.

○ 수익 욕심에 서비스 질 낮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처음 시행하면서 정부는 요양기관 개설을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했다. 이 때문에 요양기관이 크게 늘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1만5080개 장기요양서비스 기관 중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곳은 1.5%에 그쳤다. 개인(73.8%)이나 법인(24.2%)이 세운 곳이 훨씬 많았다.

민간 요양기관이 이처럼 급증했지만 관리감독이 제대로 안 돼 요양서비스의 질은 계속 논란이 됐다. 2008년부터 요양보호사로 근무한 A 씨는 “민간시설은 인건비를 줄이려고 요양보호사를 가능하면 적게 고용하려 한다. 요양보호사 1명이 6∼10명을 돌본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노인들이 더러운 기저귀를 몇 시간씩 차거나 밥과 반찬이 부실한 경우가 생긴다. A 씨는 “비용을 최대한 절약하려다 보니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로 음식을 만든 곳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치매, 중풍을 앓는 노인들이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것. 면회시간에 잠깐 오는 가족이 시설의 사정을 제대로 알긴 어렵다. 최경숙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상임이사는 “노인 인권을 보장하고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도록 제도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노인 인권의 사각지대 발생

전국요양보호사협회 등은 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장기요양기관 평가의 문제점도 거론됐다.

장기요양기관은 △요양시설이나 공동생활가정 등 시설급여 제공기관 △방문요양, 목욕, 간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가급여 제공기관으로 나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98개 지표로 지난해 9∼12월 전국의 시설급여 제공기관 3195곳을 평가했더니 1491개 기관(46.7%)만 80점 이상을 받았다. 53.3%에 해당하는 나머지 기관은 70점대 이하의 점수를 받았다. 매뉴얼 위주의 평가에 그쳐 서비스의 질을 평가하기 어려운 데다 평가가 2년에 한 번 이뤄져 실효성이 낮다는 시각이 있다.

요양보호사 B 씨는 “질 낮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시설급여 제공기관은 노인 인권의 사각지대 또는 현대판 고려장으로 불린다. 설립 요건을 강화하고 관리감독을 더 철저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이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요양보호사의 약 39%는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한다. 최경숙 이사는 “요양보호사의 근무 여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정부가 노인요양 수혜 대상을 늘리는 데에만 초점을 둘 게 아니라 제도를 되짚어 보고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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