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해 사실혼 관계의 남성을 흉기로 찌른 뒤 병원 응급실까지 쫓아가 살해한 2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범행 당시 현장에는 다섯 살 된 딸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일산경찰서는 두모 씨(41·인쇄업)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안모 씨(29·여)를 긴급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안 씨는 7일 오후 11시 45분경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일산백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병상에 누워 있는 두 씨의 가슴을 흉기로 세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다. 안 씨는 이보다 15분 앞서 인근 공원에서 두 씨와 말다툼을 하던 중 흉기로 목을 찌른 혐의도 받고 있다. 이때 두 씨는 안 씨를 피해 스스로 응급실에 찾아왔을 정도로 중상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의료진이 본격적인 치료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틈에 안 씨가 갑작스럽게 주머니에서 꺼내 휘두른 흉기에 변을 당했다. 사고 당시 응급실로 함께 온 딸이 “엄마, 왜 이래. 그러지 마”라고 울며 범행을 막으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 씨는 다른 보호자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보안요원에게 흉기를 빼앗긴 뒤 때마침 교통사고 처리 문제로 응급실을 찾은 경찰에게 붙잡혔다.
병원 관계자는 “(안 씨가) 환자 보호자였고 아이까지 있어 (두 씨를) 칼로 찌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안 씨는 2006년부터 두 씨와 만났지만 정부로부터 받는 월 50여만 원의 보조금으로 딸과 정신지체 3급인 남동생(25)과 함께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는 정도였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안 씨가 ‘1년 전부터 헤어지자고 말을 해 화가 나서 그랬다’고만 진술해 정확한 범행 동기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두 씨 유족은 “평소에 술 담배도 안하는 착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다”면서 “원한 관계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응급실까지 쫓아와서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나”라며 원통해했다. 경찰은 병원에서 범행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하고 8일 밤 안 씨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고양=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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